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 이후 미국 내 진보 성향의 유대인들 사이에서 진보 진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토로가 나온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을 비롯해 수년간 인종 평등, 동성애자와 성전환자 권리, 낙태권 등 미국 좌파의 ‘대의’를 지지했지만, 이번 전쟁으로 민주당에 힘을 실어줘 왔던 진보 진영 내 분열이 일어나면서 이런 반응이 나오고 있다.
애틀랜타의 한 유대인은 자신의 아이가 다니는 진보적 사립학교가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피살 사건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동정심으로 이스라엘에서 발생한 (하마스의) 공격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공개편지를 썼다.
그는 “우리 민족이 학살당했는데 누구도 이를 말하지 않는다고요? 내 속이 끓어오르는 건지 그냥 슬픈 건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로스앤젤레스(LA)에서 활동하는 유명 진보 운동가로 이스라엘 정부에 비판적인 랍비 샤론 브로스는 “정의와 인간 존엄성에 가장 관심을 기울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우리 세계의 명확한 메시지가 (이번 전쟁의) 이스라엘 희생자들은 어떻게 됐든 이 끔찍한 운명을 맞을만하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진보적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단체를 지원하는 신이스라엘기금(NIF)은 이스라엘에서 하마스의 공격이 벌어질 때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극단적 인종차별) 국가로 규정하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
NYT는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무차별 살해한 이후 진보 단체들이 가장 선동적인 글을 소셜미디어에 많이 올렸다고 전했다. 이들 단체가 애도의 순간조차 건너뛰고 하마스의 공격을 정당화하는데 애썼다는 것이다.
예컨대 LA의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 운동단체는 페이스북에 “사람들이 수십년간 아파르트헤이트와 상상할 수 없는 폭력에 시달렸을 때 그들의 저항을 비난하지 말고 필사적인 자기방어 행위로 이해해야 한다”며 하마스의 공격을 옹호하는 글을 올렸다.
미국의 많은 사회주의 단체가 하마스의 ‘학살’을 직접적으로 비난하지 않았다고 NYT는 지적했다.
이 신문은 수십명의 진보적 유대인 지도자들과 유권자들을 인터뷰하고 소셜미디어 게시물, 개인 이메일 등을 검토한 결과 정치적으로 연관된 미국의 유대인들이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지구 점령과 가자지구 봉쇄를 끝내기 위해 노력해왔다. 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에 항의해왔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번 하마스의 공격에서 실존적 위협을 목도하고,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와 수세대에 걸친 반유대주의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들이 미국에서도 공격받는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고 NYT는 전했다.
미국에서 유대인들이 설 자리가 더 위험해지고 지속적으로 변하는 전조가 될 것이라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변호사이자 팟캐스트 제작자인 에릭 스피걸먼은 하마스 공격 직후 열린 ‘미국 민주사회주의자'(DSA)의 친팔레스타인 집회에 분노했다며 LA시 공무원들에게 수백통의 편지를 보내 DSA를 ‘증오 단체’로 규정할 것을 촉구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이스라엘을 방문해 전폭적인 지지와 수십억달러의 지원을 약속한 가운데 하마스의 공격 이후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원 사이에 이스라엘 지지 의견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렇지만 진보 진영 내 입장이 엇갈리면서 갈등은 앞으로도 피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이스라엘기금(NIF)의 대니얼 소캐치 상임이사는 좌파의 많은 사람이 하마스의 공격에 침묵하고 오히려 정당화하는 주장은 “충격 그 이상”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