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인 출신이 아니다. 정치를 할 생각도 없었던, 검사를 천직으로 알던 사람이다. 특수 수사 통인 그는 강직했다. 좌고우면 하지 않고 법을 위반한 자들은 누구나 수사, 법치사회를 구현하려 했다. 살아있는 권력에 저항했다. 이는 그를 공정과 상식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윤 대통령은 정치를 할 생각이 없었다. 당연히 나라를 어떻게 이끌겠다는 비전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보듯 그는 여러 면에서 서툴고 투박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검사경력이 전부인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그가 정치적 경륜은 없지만 최소한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만들지 않겠나 하는 바람으로-.
예상대로 윤석열 정권의 국정운영은 처음부터 뒤뚱거렸다. 준비 안된 대통령을 뽑은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은 아니, 그를 지지한 사람들은 크게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 사회를 바로잡을 것이라는 그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그래서 웬만한 실수는 덮고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윤석열 선택의 이유인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윤대통령에 대한 지지자들의 첫 번째 실망은 인사다. 국민은 인사를 통해 대통령의 메시지를 읽는다. 그런데도 윤대통령은 검사와 영남 출신, 측근, 과거 인사들을 중용했다. 도덕적 하자가 있는 인사들도 다수 기용했다. 윤대통령은 ‘불법이 없고 능력이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밀어붙였다. 측근, 엘리트. 중심의 이 같은 인사는 보통 사람들 눈에 공정하고 상식적으로 비춰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 때와 다를 바 없었다.
둘째 오만과 불통 이미지다. 집권 1년 반이 된 지금 윤 대통령은 관록이 붙고, 자신감도 생겼다. 그런데 문제는 ‘정치가 별 것 아니네’라는 식의 잘못된 자신감과 오만이다. 대통령이 복잡한 국정을 만기친람(萬機親覽)하려는 것이 단적인 예다. 게다가 윤대통령은 남의 말을 듣기보다 자신이 주로 말을 한다고 한다. 회의는 지시일변도의 일방통행 식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국무회의 1시간 동안 대통령이 59분을 얘기한다는 비아냥까지 시중에 떠돈다. 그러면 대통령이 틀린 말이나 주장을 해도 참모가 쓴 소리나 반론을 펴기 어렵다. 정부나 여당내에 그런 올곧은 인사가 보이지도 않지만-.
셋째 전 정권을 이념과잉, 편 가르기 정치라고 비판했는데 현 정권 역시 그렇게 보인다는 점이다. 윤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전체주의 세력과의 대결, 한미일 중심의 가치동맹 등 이념문제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홍범도 장군 흉상이전이나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한일관계 정상화 등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대체로 방향은 옳다. 그러나 이에는 정교한 접근과 홍보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서투르게 밀어붙이면 야당에게 되치기 당하기 십상이다. 홍범도 장군 흉상이전 문제가 좋은 예다. 중도 층이나 지지자 상당수는 ‘왜 이 시점에 뜬금없이 홍범도가 나와’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선전에 능하고, 조직적인 야당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냉전사고의 틀에 갇힌 극우 보수정권’으로 윤정권을 규정, 공격했다. 야당은 이런 프레임 씌우기를 통해 극좌나 극우를 혐오하는 젊은 세대나 중도 층 상당수가 현정권에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끝으로 윤 대통령의 포용력 부족도 비판을 받는 사항 중 하나다. 말 잘 듣는 사람, 자기 사람만 쓰면 감동을 줄 수 없다. 윤대통령이 유승민, 이준석 등 자신에게 비판적인 사람을 내치기만 해선 안 된다. 당내 인사도 포용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화합과 통합, 소통의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여당의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는 윤 정권이 전 정권보다 더 공정하고 상식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유권자들을 실망시킨 결과다. 다시 말해 공정과 상식을 국정운영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으라는 민심의 표출이다. 윤대통령은 ‘왜 자신이 선택됐는지’를 마음에 새기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 총선에서도 참패, 남은 임기를 식물대통령으로 끝낼 것이다.
▶필자 약력 : 한국 중앙일보 도쿄특파원, 국제부장, 뉴욕중앙일보 사장을 역임했다. 현직에서 퇴임한 후 한국에서 시민운동 단체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