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나는 우울하고 힘든 날 이 노래를 큰소리로 목청껏 부른다. 그러고 나면 다시 기운이 나고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흐리다 못해 무섭도록 비가 쏟아졌던 밤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번개가 내리 꽂히며 집안의 전기가 모두 끊겨 버렸다. 하늘이 두 쪽이라도 난 듯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는 우리를 극심한 공포로 몰아넣었다. 아—우리집이 벼락을 맞았구나! 나는 너무 놀라 거실로 튀어나왔고 큰 아들은 방에서 컴퓨터를 보고 있다가 마우스를 움직이던 손에 전기가 통해 기겁을 하고는 뛰어나왔다.
그후로 우리집 전기제품들은 여러가지가 고장이 나 버렸다. TV, 컴퓨터, 인터넷, 냉장고,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차고 문까지. 다행히 전기는 곧 다시 들어왔고 에어 컨디션은 작동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고 감사하게 더운 날 에어컨마저 고장 났으면 어떠 했을 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얼마 전 수도 배관이 터져 마루바닥이 일어나고 물이 흘러나와 집안이 엉망이 되어 그 일로 보험 회사와 연락하고 처리하느라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아 골치를 앓고 있던 참인데 엎친데 덮친 격이 되고 말았다. 아이고 세상에나 이걸 어찌하나… 해결할 일이 산더미처럼 밀려드는 기분이다.
일단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고 남편과 나는 해결책을 찾는데 마음을 모았다. 먼저 냉장고 한 대가 망가졌으니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무사한 냉장고 안으로 옮겨 놓았다. 인터넷이 안되고 컴퓨터가 망가지고 나니 아이들은 할 일이 없어진 사람처럼 거실로 나와 한참이나 빈둥거렸다. 웃음이 나오는 거 보니 이 일도 다 지나갈 일이라 여겨진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앞집에선 지붕을 고치고 있었고 또 다른 집은 외부 벽을 새로 고치고 있었다. 아마도 지난번 폭우와 번개로 탈이 난 모양이다. 끊겨버린 인터넷을 고치러 온 직원이 너무 많은 곳에서 같은 일들이 발생해 고치러 다니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하였다. 나는 내게 닥친 일만 생각하고 불편하고 힘든 이 상황을 빨리 해결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쏟아내고 있었으니 복구하기 위해 동분서주 바쁘게 다니는 모습에 괜스레 미안해졌다.
다행이도 남편은 타고난 엔지니어라 집안에 어떠한 문제가 생기면 좋아하는 취미생활 하듯 하나하나 찾아보고 필요한 것 주문하고 고치는 일에 열중하고 끝내는 만족할 만하게 고쳐 놓는다. 보험에서 보상해준 돈으로 새 것을 사면 편하고 좋으련만 남편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고 돈도 아껴야 한다며 부지런히 수리한다. 새것 사기는 틀린 거 같아 아쉬웠지만 땀 흘리며 작업하는 남편이 고맙고 든든하다. 몇 주에 걸쳐 하나하나 망가진 전기제품들을 모두 고쳐 놓았고 이제 남은 건 마루바닥이다. 이번 기회에 남편은 마루공사도 한번 도전해 보겠다며 야심 찬 소리를 한다. 혼자서 집도 지을 수 있겠다며 재미난 놀이감이라도 얻은 아이처럼 매일 저녁 인터넷을 뒤져가며 마루바닥 수리하는 법을 보고 익히는 중이다.
미국에서 살다 보니 이런 일도 하게 되는구나 싶다. 연습삼아 작은 화장실 바닥의 마루를 뜯어내고 타일로 깔아 보았다. 남편은 재료 구입부터 나르고 붙이는 작업을 해 보면서 자신감이 생겼는지 거실 마루 공사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때로는 사서 고생 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인건비가 놀랄 정도로 비싼 미국에서 여러모로 할 줄 아는 남편은 매우 소중한 일꾼이 되어 준다.
떨어져 나간 마루바닥 곳곳이 눈에 거슬리고 마음에 들지 않아 볼때마다 한숨이 나오려 하지만 다 큰 두 아들과 함께 멋지게 고쳐 놓겠다고 큰 소리 치고 있으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면서 씩씩하고 큰 소리로 이 노래를 불러야겠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게 한 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들국화의 ‘사노라면’을 부르면서 웃으며 남편과 아들 녀석들을 응원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