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인생배우기(21)
‘처음에는 기분이 무겁게 가라앉더니… 불쾌한 기분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어요.’ 책 표지 가득한 낙엽사이로 빗자루를 들고 목도리를 휘날리며 달리는 아이의 이름은 애드다. 아주 작은 일로 나빠진 기분을 감당하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있다. 나쁜 기분은 빠르게 부풀더니 애드를 더욱더 몰아붙이고 애드는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어쩌지를 못한다. 그래서 애드는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낙엽과 함께 꽃과 차와 사람까지 쓸어버려서 모두가 뒤엉켜 온 마을이 어둠 속에 갇혀버린다.
거대한 낙엽산 아래 쪼그리고 앉은 애드는 생각한다. 자신이 모두를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까지 괴롭히고 있다고. 하지만 애드는 다시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아 망설인다. 그때 새로운 바람이 휙 불어오고 아주 작은 바람은 점점 커져서 세상이 갑자기 밝아 보인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 애드의 분노는 아주 작은 바람 한줄기에 사그라들었다.
한국에서 〈나쁜 기분이 휘몰아 칠 때〉라고 제목 붙은 그림책, 〈Sweep〉는 가을과 딱 맞는 그림책이다. 일러스트레이터-질리아 사르디가 그린 낙엽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저절로 가을가을해진다. 언제부턴가 많이 쓰는 ‘가을가을하다’는 말은, ‘벼나 보리 따위의 농작물을 거두어 들이다’라는 뜻을 가진 ‘가을하다’는 동사와는 다르게 쓰이는 듯하다. 가을 풍경이나 느낌들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가을 탄다’라는 말과 더 가깝게 들린다.
뭐라고 표현하든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고 인생의 결실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 계절이다. 더 크고 더 많은 결실을 꿈꿨지만 그러지 못한 스스로에 공허해지고 쓸쓸해지는 계절이다. 화려한 단풍에 기분이 들뜨다가도 괜스레 축 가라앉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해 보지만, 사실 나이 들수록 이해하기 힘든 게 사람 감정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감정이란 것은 어른들보다 훨씬 혼란스러운 것이다. 기분이 나쁘지만 자신의 감정이 화가 나서 그런지, 슬퍼서 그런지, 심심해서 그런지, 아파서 그런지를 알지 못한다. 감정을 알 수 없으니 어떻게 풀어야할지 모르고 작은 불쾌감이 점점 커져서 거세게 소용돌이 칠 때까지 심술을 부리거나 소리를 지르는 등의 방법으로 강하게 표현하는가 하면 가만히 감정을 억누르며 회피하면서 점점 위축되기도 한다. 그림책 〈Sweep〉는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감정 안내서 같은 책이다.
애드가 좋아하는 연과 풍선이 떠 있는 하늘을 한번 보았더라면, 모든 것을 쓸어버리기 전에 애드는 기분이 나아졌을 것이다. 또는 누군가 애드에게 ‘너는 지금 화가 났구나.’하고 공감해줬더라면 별일 없이 기분이 좋아졌을지도. 심하게 화가 난 아이가 스스로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닫고 변화를 시도하기는 어렵다. 자기가 쓸어버리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에너지를 몽땅 쏟아낸 뒤 완전히 지쳐버린 애드는 바닥에 떨어진 연 하나를 발견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 하늘에 날리면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었을 연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제 애드는 나쁜 기분에 휩쓸려 버릴 것 같을 때는 두 번 생각할 만큼 성장하게 되었다.
‘다 쓸어버릴까? 아니면, 그러지 말까?’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이렇게 자신의 삶에서 선택할 권리를 잃지 않는 것이다. 화나 우울 같은 나쁜 기분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 인식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기분을 전환해 줄 한줄기 바람 같은 말이나, 노래, 책, 사람, 환경을 선택해야 한다.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줄 선택지가 많다면 아마도 나쁜 감정에서 벗어나기 더 쉬울 것이다.
여름동안 무성한 잎으로 그늘을 만들어주던 잎들이 단풍이 들 틈도 없이 바람에 떨어진다. 낙엽을 쓸다보면 땅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쓸리지 않는 낙엽이 있다. 마음속 깊이 남은 감정 찌꺼기를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나뭇잎이 참 예쁘다. 쓸어버리려 해도 쓸 수 없었던 어떤 감정도 어쩌면 예쁘게 바뀌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