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러햄 링컨’의 초상화를 보면 헝크러진 머리와 깊게 패인 팔자 주름 그리고 다 죽어가는 듯한 반쯤 감긴 눈을 한 그의 모습이 들어온다. 대통령이라면 말끔하게 손질된 머리와 형형하다 못해 상대방을 쏘아보는 눈빛이 연상되건만, 링컨의 모습은 대통령은 커녕 평생 고생만 한 옆집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그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건 하나다. ‘고뇌’.즉 괴로워하고 번뇌하는 모습이다.
작금의 우리나라는 링컨 재임 당시의 미국과 비슷한 상황에 있다. 우리나라는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내걸고 북한과 대립하고 있는 바, 이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일부 정치인들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들이 행하는 짓은 링컨이 행했던 짓과 다를 바 없다. 결정적 차이점은 그 목적에 있다. 개인적인 영달을 추구함과 개인적인 목표를 추구함의 차이 말이다.
영화 ‘링컨’은 링컨의 생애 마지막 4개월의 고뇌를 그리고 있다. 그는 무엇에 그리 괴로워하고 번뇌했을까. 영화는 1865년 1월의 어느 날, 전장에서 존경하는 대통령과 대면한 한 흑인 병사가 1863년 11월에 있었던 게티즈버그 연설을 암송하는 것으로 시작해 1865년 3월 두 번째 취임 연설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짧은 시간 구도 속에서 영화의 초점은 노예제 폐지를 명문화한 수정헌법 13조를 하원에서 통과시키는 입법 과정에 모아진다. 그렇지만 이 입법 과정의 배경이자 맥락은 어디까지나 전쟁 상황이었고, 수많은 사건들이 폭주했던 복합적인 국면이었다. 노예제의 찬성이냐 반대냐 하는 것, 말하자면 도덕적 대의를 둘러싼 문제 사이의 선택이라면 오히려 쉽고 단순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전이 끝날 시점에서 즉각적인 평화와 노예제 폐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상호 배타적인 선택지가 되고 말았다. 진행 중인 평화협상을 성사시켜 조기에 종전을 이룬다면 많은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겠지만, 정작 전쟁의 목적이었던 노예제 폐지는 희미해질 수 있었다. 아니면 종전 협상을 지연시키더라도 노예제 폐지를 고수할 것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링컨의 사려 깊음은 노예해방에 대한 최소 정의적 접근 즉, 흑인 노예에 대한 ‘법적 평등’으로 목표 설정을 조정하는 데 있었다. 온건한 목표 설정은 그가 추구하는 연방의 유지라는 또 다른 목표와 충돌하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수정 헌법 통과에 필요한 하원의원 재적 3분의 2를 확보하기 위해 제일 먼저 설득과 포섭의 대상이 되는 그룹은, 자신의 정당인 공화당 내 강경파였다. 흑인 노예에게 투표권을 포함해 모든 권리를 일시에 부여해야 한다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질 때, 보수파와 부동표의 반발을 불러올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가장 어려운 문제의 하나는, 그들이 믿지 않는 것을 어떻게 믿도록 설득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링컨은 정공법을 택했다. 이들에 대한 진심어린 설득과 동시에 링컨은 의석을 곧 잃게 될 민주당 의원들을 상대로 공직이라는 달콤한 미끼와 금전으로 매수하고, 반대자들을 협박하고 포섭해 나가는, 부도덕한 수단도 포함된다.
1860년 링컨이 대통령이 됐을 때 미국 헌법에는’노예’라는 단어가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흑인은 노예였고,’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건국이념은 무색했다. 링컨은 결국 전쟁이라는 무서운 불 속을 걷는 험난한 길을 택했다. 남북전쟁이 끝나는 순간 노예제도 폐지 역시 물거품이 될 것이라 확신하고 전쟁 종결 이전에 노예제도 철폐를 위해 헌법 13조 수정안을 통과시키려고 나섰다.
수정안 통과까지 20표만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남부군으로부터 평화제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링컨은 헌법 제13조 개정을 완수하기 위해 종전까지 미루면서 분투했다. 70만 젊은 군인들의 어쩔 수 없는 희생을 지켜보며 링컨의 몸과 마음도 황폐해 갔지만, 그는 흔들림 없이 남북전쟁의 파고를 넘고 끝내 노예제도 철폐를 이뤄낸다.
흔히 고난의 정치역정을 통해 최고권력자가 되면 대부분 선거운동 때 도움을 주었던 참모들을 주요 직책에 임명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게 된다. 그러나 링컨은 주요 각료에 당내 경선했던 경쟁자, 또는 반대당인 민주당의 지도자에게 중책을 맡겨 국민통합의 리더십을 실천했다. 국무장관에 슈어드, 재무장관에 체이스, 법무장관에 베이츠, 그리고 전쟁장관은 민주당 출신의 애드윈 스탠턴을 임명했다. 앞에 3명은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다투거나 적이었던 인물들이다. 스탠턴은 민주당 출신으로 링컨을 ‘숲 속의 고릴라’라고 조롱했다. 링컨은 스탠튼이 그를 괴롭힐 때 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링컨은 대통령으로 재직한 4년여 동안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전쟁터에서 보냈다. 아들 윌리가 죽었던 때와 천연두에 걸렸던 시기를 제외하고 링컨은 거의 백악관에 있지 않았다. 위험한 전선을 직접 찾아 전쟁 상황을 점검했으며, 부상병들을 찾아서 위문했다. 사병들을 만나 격의 없는 인생 대화를 나누는 링컨은 소통으로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해 나갔다.
전쟁 초기 연방군 총사령관은 매클렐런 장군이었는데 한번은 링컨이 위로차 전쟁장관 등 주요 참모들을 대동하고 그의 막사를 찾았으나 회의 중이라는 이유로 대통령 일행을 마냥 기다리게 했다. 그런 뒤 저녁때가 되자 ‘부관이 “장군이 너무 피곤해 잠자리에 들었다’ 고 통보해 왔다. 너무 어이없고 무례한 행동이라 국방장관 등 참모들이 즉각 해임을 건의했지만, 링컨은 ‘맥클렐런으로 전쟁을 끝낼 수만 있다면 그의 군화를 닦아주고 그의 말고삐라도 잡겠다’며 오히려 참모들을 설득했다는 실화는 유명하다.
링컨은 나폴레옹처럼 뛰어난 장군도 아니었고, 프리드리히 대왕처럼 대단한 정치인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성실함과 정직이라는 위대함이 있었다, 정직은 정치인의 최고 덕목이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의 재앙이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지금껏 단 한 번도 통합과 화합을 이루어낸 대통령이 없었다. 지금 우리에겐 링컨 같은 리더가 필요하다. 소통과 포용으로 함축되는 링컨의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