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이틀 동안 미국 동부에 사는 지인들을 만나러 다니는 여행을 다녀왔다. 지난해와 달리 삶의 자리가 바뀐 지인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려는 우리 가족에게 그들이 어떤 말을 들려줄지 듣고 싶기도 하여 떠난 여행이었다. 그리고 아직 단풍이 남아 있다면 가을 끝자락의 정취를 느껴보고 싶은 마음도 여행길에 나서도록 부추겼다.
블루리지를 지나 뉴욕으로 올라가는 81번 고속도로는 언제 봐도 푸근하다. 길고 긴 애팔래치아 산맥은 산자락에 보금자리를 가진 사람들뿐 아니라 길 위를 달리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오래도록 품어준다.
산맥 주변에 이미 단풍이 다 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모여 있는 걸 보면 곧 겨울이 다가오고 연말이 멀지 않다는 생각에 달콤하고 흥겨웠다. 채도가 낮은 노란색과 붉은색 이파리들과 상록수의 초록색이 어우러진 나무 군락을 지나칠 때는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아직 단풍잎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아 고마웠다.
미국은 지역마다 식물원이 있어 각 지역에서 잘 자라는 식물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 나는 식물과 관련한 특별한 지식이나 경험은 적은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꽃 구경이 즐겁다. 여행지에 있는 식물원을 일부러 찾아서 방문하기도 하는데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편안해진다. 이번에도 식물원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시들어가는 가을꽃들도 예쁘고 친환경적인 식물원을 견학하는 아이들 꽃도 예뻤다.
나의 지인들은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 몸이 연약한 사람, 가난한 사람, 이민자 등등. 어떤 이는 푸드 뱅크에 가서 봉사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식료품을 포장해 직접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한다.
대도시에 사는 한인 젊은이들과 밥 한 끼를 나누며 영성 있는 삶의 행복을 나누려 애쓰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음악학교를 개설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악기를 가르치며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또 어떤 이들은 목사가 없는 교인들을 위해 몇 주에 한 번씩 함께 예배를 드린다. 한 지인 가정에서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장기기증을 독려하고 여러 시각 장애인에게 각막 이식을 돕는 이도 만났다.
어느 지인은 오래도록 걸어온 목회의 기존 방식을 벗어나 교회가 아닌 영성센터를 꿈꾼다. 제도로 규정한 교회의 전통과 규율이 아닌 영성 훈련과 삶의 실천을 통해 자유로운 신앙생활로 나아가려는 창조적 몸부림이다. 다만 한국에서 시도해보겠다고 하니 쉽게 가보지 못할 것 같아 살짝 아쉬운 마음이 스쳤다.
지인들에게서 신앙 실천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다. 그들은 백수가 된 우리 가족에게 한결같이 정성이 듬뿍 담긴 음식과 깨끗한 잠자리를 제공하며 격려해주었다. 포옹을 좋아하는 아들 산이와의 포옹 인사도 잊지 않는 그들의 섬세한 보살핌은 정말 감동이다.
버지니아, 뉴욕, 로드아일랜드까지 올라 갔가다 되돌아 사우스캐롤라이나를 거쳐 애틀랜타에 이르렀다. 흐릿한 비가 내리는 토요일 오후였다. 언젠가 들렀던 순대국밥 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한적해 보이는 식당을 들어서니 손님들이 가득하고 먹을 차례를 기다리는 대기자들까지 있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식당 한가운데 있는 테이블로 안내되었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새로운 손님들은 계속 대기자 줄을 이어갔다.
나는 궂은 날씨에 어울리는 뜨끈한 국밥을 먹으려는 우리 같은 사람이 참 많구나, 생각했다. 국에 담긴 순대나 얄팍한 고기에 양념이 잘 밴 배추겉절이를 척 걸쳐 먹으니 입에 착착 감긴다. 긴 여행으로 목이 아프고 기침이 나오는 바람에 입맛이 떨어졌는데도 음식이 잘도 들어간다.
그러다 문득 집에서 세 시간이나 떨어진 곳에서 토요일 오후에 한가로이 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그것은 주말이 주일예배를 향해 있는 우리 가족에게 좀처럼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역시 새로운 일을 위한 변화의 시간을 지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친구는 말로만 영적이고 몸으로 살아내지 않는다면 그건 꽝이다!,라고 강조했다. 세상 안에서, 폴 틸리히의 개념을 빌려 표현한 ‘거룩한 타율’에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