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4층 갤러리에 모인 100여명의 관객들은 작은 탁자 위에 놓인 한국 신문을 읽는 흰수염의 노신사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한국적 개념미술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성능경(79) 작가가 자신의 대표적인 행위예술 작품인 ‘신문 읽기’를 뉴욕에서 선보이는 장면이었다.
성 작가는 1면과 반대면의 기사를 하나씩 큰 소리로 읽은 뒤 그 기사를 오려나갔다.
1시간 가까이 지나자 신문 위에 기사가 인쇄된 부분은 사라졌다.
성 작가는 신문 테두리를 관객들에게 보여준 뒤 “희망의 나라로”라고 외치고 퍼포먼스를 종료하자 관객들은 일제히 큰 박수를 보냈다.
기사를 오려낸 뒤 신문 테두리를 보여주는 성능경 작가.
이 작품은 성 작가가 1974년 한국의 전위 미술단체 ST 전시회에서 2개월간 매일 신문기사를 오리는 작업을 한 데에서 파생됐다.
당시 이 작품은 유신 체제 당시 신문 검열을 풍자하는 예술가의 저항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49년 전의 한국 상황에 대한 지식이 없는 뉴욕의 미술 애호가들도 이날 성 작가의 퍼포먼스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성 작가는 1970년대 한국 전위예술을 이끌었던 ST의 회원으로 활동했고, 현재까지 현역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한국 미술계의 주요 원로작가다.
성능경 ‘신문읽기'(1986년). 작가 제공/구겐하임 미술관 홈페이지 캡처
자신을 ‘비주류 미술가’로 불러온 그는 이날 퍼포먼스에 앞서 “돈이 되는 예술만 돌게 돈의 신(神)이시여, 제 퍼포먼스와 오늘 이자리에 모인 관객들을 굽어살펴주시옵소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그는 비주류 미술가라는 자평과는 달리 최근 한국 실험미술이 재조명받으면서 올해에만 네차례나 개인전이 개최될만큼 잘나가는 작가가 됐다.
이날도 뉴욕의 주요 갤러리 관계자들이 모여 성 작가의 퍼포먼스를 지켜봤다. 성 작가의 퍼포먼스는 구겐하임 미술관이 내년 1월까지 개최하는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에 맞춰 기획됐다.
앞서 구겐하임 미술관은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건용(81) 작가의 퍼포먼스도 소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