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NYT)는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4년 선거 당선에 대비해 ‘출생 시민권 금지’ 공약을 내걸었다고 보도했다. 그는 소셜미디어에서 “미국 시민권자 자격을 취득하려면 적어도 부모 중 한 명이 미국 시민권자이거나 합법적인 거주자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법이민자의 자녀의 미국 시민권 취득, 또는 일부 부유층 외국인의 원정출산을 방지하겠다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출생시민권 폐지’는 매우 위험한 공약이다. 한마디로 미국 헌법을 위협(Constitutional Crisis)하는 공약이다. 미국헌법 14조의 속지주의를 대놓고 무시하겠다는 주장인 것이다.
미국 수정헌법 14조 1항은 미국 시민의 자격을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귀화한 사람, 미국의 사법권이 미치는 곳에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미국 시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14조가 만들어진 때는 남북전쟁 종전 직후인 1868년이다. 노예해방이 이뤄졌지만, 흑인 노예들의 법적 위치는 여전히 애매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시민권자임을 증명하는 별도의 증서나 비자, 영주권 같은 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영토에서 태어난 사람은 시민권자’라는 헌법 조항을 추가해, 과거 노예들에게 시민권이 주어진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약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완전히 무시한 채, 불체자나 원정출산이 싫다고 미국 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 헌법을 바꾸려면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헌법 14조 폐지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무엇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는 대통령 재직중인 2019년에도 똑같은 주장을 했지만 ‘공수표’로 끝나고 말았다. 권력이 있을 때도 못했던 일을 지금 할 수 있을리가 없다.
문제는 그가 2024년 대선 유력주자라는 것이다. 그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되어서도 이런식으로 헌법을 무시한다면, 민주주의의 기본인 3권분립이 무너지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CUYN 로스쿨 헌법학 교수인 글로리아 J. 브라운-마샬(Gloria J. Browne-Marshall)은 “연방대법원(사법부)이 헌법에 따라 결정을 내렸는데, 3부 중 행정부나 입법부가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이 헌법적 위기”라고 지적한다.
시카고 대학 로스쿨(University of Chicago Law School) 아지즈 Z. 허크(Aziz Z. Huq) 교수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헌법 무시에 대해 지적한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4건의 형사 기소가 걸려있지만 그게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라며 “진정한 문제는 이중 2건이 헌법에 규정된 선거, 다시말해 민주적 절차(democratic process)에 개입하려 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운 마샬 교수 역시 “미국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 후보 자격은 나이제한 정도밖에 없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출마 자체는 문제가 없다”면서도 “문제는 그가 헌법적 절차를 방해한 2021년 국회의사당 폭동에 관련됐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내년 대선에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헌법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며, 우리 한인들의 일상에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브라운-마샬 교수는 “미국 헌법은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로 이뤄진 미국을 하나로 묶는 중심”이라며 “헌법에 대한 해석 차이가 아니라 아예 헌법을 무시한다면 민주주의가 위기(crisis of democracy)에 빠진다”고 설명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어떠한 정치적 견해를 가지는 것이야 자유지만,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되려면 최소한 현행 미국 헌법에 대한 존중을 보여야 할 것이다. 또한 한인 유권자들도 내년 대선에서 후보들에게 헌법을 존중하는지 여부를 물어봐야 할 것이다. 하다못해 헌법의 출생시민권 조항 하나만이라도 무력화된다면, 수많은 미주 한인과 가족들의 일상에 커다란 타격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