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내 의자가 어디로 갔지? 작업실에 있던 의자가 사라졌다. 작고 까만 내 의자 대신 팔걸이가 있는 백색의 묵직한 등받이 의자가 놓여있다. 책상 세 개에 이젤들과 재료 정리함, 캔버스들이 차지하고 있는 작업실은 여유 공간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하얀 드레스를 입고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 기다리는 신부처럼 새하얀 의자만 눈에 띄었다.
한 달 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집 분위기가 바뀌어 있다. 가장 먼저 차고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던 물건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주방 잡화들이 무질서하게 들어있던 벽장도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있다. 말끔히 청소된 집은 떠나기 전보다 윤이 반짝반짝 났다. 서툰 솜씨로 화장실 실리콘도 떼어내고 다시 발랐다는 걸 알았다. 평소에 하지 않는 많은 일들을 내가 없는 동안 남편은 틈틈이 했나 보다. 나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열심히 했다는 남편의 너스레에 뭔 지 모를 애잔함이 느껴졌다.
그것 만이 아니었다. 새로 산 의자에 앉아 보라며 맘에 드는지 물어왔다. 내가 종일 앉아 있는 곳인데 불편해 보여서 편안한 것으로 하나 샀단다. 쓰던 것은 어디로 갔냐고 물었더니 이층 방으로 보냈다고 했다. 나는 새것이니 좋다고 말은 했지만 작업실에 어울리는 의자는 아닌 것 같았다. 등 떠밀려 앉으며 부족한 나의 표현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너무 고급스러워서 내가 호강하는 것 같다고 말은 했지만 너무 무덤덤한 것 아냐?
내 머릿속은 와락 끌어안고 뽀뽀라도 하면서 고맙다 사랑한다 최고다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고 묻는다. 남편도 그런 반응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부모님은 왜 이런 표현들을 자제하고 살게 교육하셨을까? 여우 하고는 살아도 곰 하고는 못 산다고 했는데 속에 아무리 많은 것들이 있으면 뭐 하나. 표현을 해야 상대방도 알지. 마음은 간절한데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다는 걸 확인한 것 같아 속상했다.
용도에 따라서 의자의 모양과 역할도 달라진다. 의자는 사람이 앉기 위한 도구에서 장식을 위한 것까지 수많은 디자인과 역할이 다른 의자들이 있다. 한 때는 나도 용도와 상관없이 마음에 드는 의자를 사서 집안 곳곳에 놓기도 했었다. 몇 번 앉지도 않는 의자들을 수없이 이사를 다니면서도 버리지 못했다. 어찌 의자뿐이랴. 많은 살림살이들이 그랬었다.
언제부터 인가 나는 많은 것들을 나누고 버리며 정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재활용하고 고쳐 쓰며 집안을 채우고 있는 물건을 줄여 가기로 맘먹었다. 나이가 들면서 삶을 좀 더 단순하고 심플하게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에 우선순위에 둔 일이기도 하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애착이나 집착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내 삶이 한층 더 가벼워진 것 같다.
작업실 의자는 무빙 세일 하는 곳에서 오 불을 주고 산 것이다. 조금 낡았지만 작고 바퀴가 달린 까만 의자는 복잡한 내 작업실에 딱 맞는 사이즈였다. 등받이에 바싹 붙어서 앉으면 작업하는데 불편이 없었다. 내 몸에 맞춰진 그 의자를 다시 가져다 놓고 싶지만 남편이 실망할 것 같아 당분간은 참아야 할 것 같다. 아무리 봐도 새로 산 의자는 비서실 여직원이 앉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던 일을 멈추고 팔걸이에 잠시 기대어 쉬어 본다. 남편의 사랑과 고마움이 편안함으로 느껴지는 의자다. 그럼에도 작업하기에는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물감을 묻히기에도 너무 깨끗하고 부담스러운 의자다. 나는 안락한 쉼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약간의 긴장도 필요한, 작업하는데 불편함이 없는 의자면 된다. 아무래도 내가 쓰는 것보다는 남편에게 맞을 것 같다. 적당히 시간이 지나면 남편의 서재로 옮겨야겠다. 이층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내게 맞춰진 낡은 의자를 제 자리로 돌려놓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