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넘쳐 흐르다 못해 재빠르게 익히기도 버겁고 나와는 관계없이 지나가는 것들이 대부분인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방송에서 ‘칠곡 가시나들’ 이라는 짧은 다큐 영화를 보았는데 칠곡 한 마을에 살고 계신 할머니들의 이야기였다. 모두 팔십은 훌쩍 넘겨 인생의 막바지를 살아가는 나이들 이셨는데 영화 속 할머니들 모두는 놀랍게도 문맹인, 다시 말해 한글을 모르고 계신 분들이셨다. 영화를 만든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분들은 학교를 가야하고 배움이 시작되는 어린 나이에 전쟁으로 인해 무섭고 너무나 어려운 가난한 시절을 보내야 했지요.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하고 나서는 교육 현장에서 마저도 한글을 없애고 일본어를 사용하게 하였기 때문에 시골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 그냥 일본말을 내뱉으며 살아야 해서 한글을 배울 기회를 잃었고 배울 여유없이 삶을 살아 내신 분들인 것이죠.” 라고 .
얼마나 답답하고 불편한 일이 많았으며 마음이 무거웠을까… 그렇게 팔, 구 십년 동안 글을 모르고 사셨지만 할머니들이 해 주시는 한마디 한마디에선 거저 얻을 수 없는 삶의 지혜와 해학들이 가득했다. 늙은 나이에 글을 배우느라 손주 뻘 되는 여선생님한테 꼬박꼬박 존대말을 하시고 또박또박 자음과 모음을 맞춰 가며 글자를 익히고 써내려 가는 날을 반복하셨다. 평생 먹고 사는 일에 온 몸을 쓰고 살아온 분들의 손이 고울 리가 없었고 허리와 다리가 성할 리가 없었다. 연필을 잡고 의자에 앉아 칸칸이 공책에 한 글자 한 글자 써넣는 모습은 할머니들의 시간이 거꾸로 흘러 안쓰러 우면서도 대견하고 기특한 아이들 같았다.
장에 나온 할머니 두 분이 간판을 가리키며 농약. 씨앗. 약국. 떡집.. 큰소리로 읽고는 서로 바라보며 확인하고 웃는 모습은 우리 아이 어릴 적 한글 배울 때 내가 손으로 가리키면서 함께 소리 내어 읽던 모습과 같아 내 마음이 덩달아 신이 났다. 제법 글을 익힌 그녀들은 이제 그들의 삶을 글로 표현하는 시를 써 보기로 한다. 무슨 말 장난도 아니고 그냥 툭 내뱉은 거친 우리 어머니들의 혼잣말 같기도 한 그 말들이 고스란이 시가 되어 기록되었다.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그녀들만의 언어들로 잔치가 벌어진 것이다. 이상한 기분이다.
다듬고 다듬어 맛을 내보려 애쓰던 글에선 맡아보지 못한 냄새였고 이해해 보려 애쓰던 글에선 보이지 않았던 웃음이었다. 할머니들의 도전은 아름다웠고 숭고했으며 의미 있는 일이었다. 처음 내가 정색하며 던진 말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 나이까지 한글을 모르고 산다는 게 말이되?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지..” 내가 얼마나 버르장머리 없고 싹수없는 가시나 인지 알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야 말로 넘쳐나는 정보와 지식을 배우고 익히지 못하고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어들을 모른 체 살아가고 있는 문맹자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정신없이 쏟아져 나와 넘쳐흐르는 정보와 지식들이 나에겐 너무 어렵고 버겁다. 내가 살아온 방식으로 그냥 살아가기도 바쁘다며 고집하면서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그 옛날 할머니들과 무엇이 다른 걸까? 배우고 싶지 않다고, 배울 필요가 없다고 큰소리 치고 외면하고 있는 나는 사실은 두려워서 이다. 용기 내어 배우고 익혀 적응해 가는 것이 나로선 겁이 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들도 그랬을까?
하지만, 정작 익혀야 할 것들을 미뤄두면 열심히 인생을 살고 나서도 후회나 미련이 남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꼬부랑이 할머니가 되어서도 미뤄둔 숙제는 해야만 하는 것이었는지 다 끝내고 나서야 아쉬움 없는 그녀들의 얼굴을 보니 나도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 부터라도 하나하나 배우는데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다 하는 생각을 한다. 무엇을 배우고 익히는데 필요한 수고는 칠곡 가시나들처럼 기쁨으로 변할 것이고 미뤄둔 숙제를 하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