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쇼의 제왕으로 30년 이상 미국 방송계를 호령했던 데이비드 레터맨(76)이 깜짝 복귀했다. 자신이 4000회 이상의 에피소드를 진행했던 ‘더 레이트 쇼’에 지난 21일 출연하면서다.
자신의 후임인 스티븐 콜베어가 호스트 자리에, 그는 게스트 자리에 앉았다. 레터맨이 등장하자 객석에선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레터맨은 현직 대통령부터 셀럽들까지 수천 명과 1대1로 대화하는 형식의 토크쇼로 1990년부터 2015년 은퇴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다.
심장병 투병과 방송계 은퇴 후에도 그는 2018년 넷플릭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오늘의 게스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원제는 ‘오늘의 게스트는 소개가 필요없다’)’라는 제목의 토크쇼 시리즈를 제작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이다. 넷플릭스 시리즈에 출연한 게스트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부터 뮤지션 빌리 아일리시와 배우 조지 클루니 등을 불렀다. 레터맨의 파워다.
레터맨은 특유의 냉소주의 유머가 트레이드마크다. 친정 격인 토크쇼에 돌아와서도 그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는 여전했다. 스티븐 콜베어가 그에게 “은퇴 후에 어떻게 지냈냐”고 묻자 그는 “시간이 남아서 부인에게 ‘아이 하나 더 낳을까, 아니면 이혼이나 할까’라고 물었다”고 대수롭지 않은 듯 답했다. 레터맨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지만 좌중은 폭소를 터뜨렸다.
70대 후반으로 부인과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그가 “심심하니 애 하나 더 낳든지 아니면 이혼이나 할까”라는 식으로 뚱한 유머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냉소적이고 때론 조롱하는 듯한 그의 톤은 때론 비판도 받았다. 가수 셰어는 그의 토크쇼에 출연해 대화를 주고받던 중 레터맨을 향해 “이런 나쁜 자식(asshole)”이라고 받아치기도 했다.
데이비드 레터맨의 젊은 시절. [출처 및 저작권 데이비드 레터맨 페이스북 페이지]
데이비드 레터맨의 젊은 시절. [출처 및 저작권 데이비드 레터맨 페이스북 페이지]
레터맨은 본래 코미디 작가를 꿈꿨지만 젊은 시절엔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했다. 인디애나 주에서 태어난 그는 지역 방송에서 기상 캐스터와 라디오 진행자 등으로 일했다. 그러다 일생일대의 결심을 하고 로스앤젤레스(LA)로 이주한다. 당시 그의 부인이었던 미셸 쿡이 “당신 재능이 아깝다”며 등을 떠민 덕이다.
둘은 전 재산이다시피 했던 픽업트럭을 몰고 LA에 갔고, 그는 점차 재능을 인정받아 코미디 작가이자 진행자로 인맥과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부인과는 LA 이주 2년 후 이혼했다.
그를 특히 눈여겨본 건 당시 토크쇼의 전설, 자니 카슨이다. NBC에서 ‘자니 카슨 쇼’를 오래 진행한 카슨은 은퇴하며 레터맨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싶어했다. 레터맨도 내심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나 NBC가 낙점한 건 제이 레노였다.
낙담한 레터맨에게 손을 내민 건 CBS였다. 그렇게 그는 CBS에서 ‘더 레이트 쇼 위드 데이비드 레터맨’을 시작했다. 제이 레노와는 평생의 라이벌이 됐다. 시청률은 엎치락뒤치락했지만, 제이 레노 쪽이 살짝 더 높았다고 한다. 레터맨은 한때 무슬림 무장단체 알 카에다의 살해 위협이 있다는 루머에 “국무부에서 조사 중이라고는 하는데, 사실 이건 제이 레노일 것”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은퇴 후에도 그의 방송 토크쇼 DNA는 여전하다. 콜베어가 그에게 “뭐가 가장 그립냐”라고 묻자 레터맨은 “모든 게 다 그립다”며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자부심은 소중하다. 게다가 거의 매일 방송이 있으니 오늘 망쳤다고 해도 내일 다시 만회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나. 이런 기회 역시 인생에서 소중히 여겨야 한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