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석유왕국’서 벗어나 ‘포스트 오일’ 경제 구조 다변화 시도
인권 탄압국 이미지 희석…국제 무대 영향력 확대도
막강한 ‘오일머니’를 내세운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가 한국과 이탈리아를 누르고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를 유치하게 됐다.
사우디는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외곽 ‘팔레 데 콩그레’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제173차 총회에서 1차 투표에 참여한 총 165개국 중 119개국 표를 얻어 여유 있는 표 차로 엑스포 유치에 성공했다. 한국 29표, 이탈리아 17표에 비해 차이가 큰 득표수다.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 외무장관은 투표 결과 뒤 프레스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제사회가 우리의 ‘비전 2030’, 전 세계를 위한 우리의 제안에 신뢰를 표현해 준 것이라 생각한다”며 “저희를 지지해 주신 모든 국가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기대에 부응하는 엑스포를 개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28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외곽 팔레 데 콩그레에서 열린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2030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투표 결과 부산이 탈락하자 아쉬워하며 서로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종 후보국이었던 한국과 이탈리아에 비해 일찌감치 유치전에 뛰어든 사우디는 초반부터 자본력을 내세운 공세를 펼치며 득표에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우디는 ‘은둔의 석유 왕국’에서 벗어나 경제·사회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설계한 ‘비전 203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번 엑스포를 추진해 왔다.
슬로건 역시 ‘변화의 시대: 미래를 내다보는 내일로 함께’다.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권을 쥐고 엑스포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사우디로선 엑스포라는 전 세계적 이벤트를 성공리에 개최함으로써 보수적 이슬람 왕정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 국제 무대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석유에 의존했던 사우디가 ‘포스트 오일’ 시대를 주창하며 태양에너지 등을 이용해 탄소 중립을 넘어 ‘탄소 네거티브’ 엑스포를 만들겠다고 강조한 것도 전 세계적 도전 과제인 기후 위기에 맞서 책임 있는 국제 사회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사우디는 이미 지속 가능한 교통 인프라를 개발하고, 순환 경제 모델을 촉진하며, 에너지 효율적인 건물을 조성하는 중이다. 리야드 도심에는 여의도 16배 규모(16만㎢)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킹 살만 공원을 만들어 생태 도시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사우디는 이번 엑스포를 통해 인권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탈피하는 효과도 꾀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성 보장, 최고 수준의 노동권 담보 등 ‘평등, 포용, 지속가능성의 원칙’을 핵심 정신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우디는 지난 6월 4차 프레젠테이션에 이어 이날도 하이파 알 모그린 공주 등 여성 연사 두 명을 내세워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도 부각했다.
엑스포는 석유 수출에 한정된 사우디의 경제 저변을 넓힐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엑스포를 계기로 외국 기업들의 투자를 적극 끌어낼 수도 있다.
세계 각국의 문물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사우디의 문화·예술·과학·기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도 된다.
성공적인 국가 변혁을 위해 사우디는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한다.
2030년까지 사우디 전역에 3조3천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며, 이 가운데 78억 달러는 엑스포를 위해 쓰인다.
리야드 엑스포 부지만 600만㎡에 이른다. 이곳은 ‘사막 속 정원’이라는 리야드의 유래와 도시·지역 간 지속 가능한 미래를 개척한다는 국가 비전을 모두 담아 미래지향적 공간으로 설계된다.
킹 칼리드 국제공항에서 차로 약 5∼10분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며 추후 새로운 지하철 네트워크도 연결될 예정이다.
사우디는 2030년 10월 1일부터 2031년 3월 31일까지 예정한 리야드 엑스포에 226개국을 포함한 총 246개 기관이 참석하고, 연간 4천100만명이 방문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 국가, 한 전시관’ 약속에 따라 참가국에는 개별 전시관을 마련해 줄 계획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