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 뜨거워도 괜찮아>. 소셜미디어 오디오북에서 우연히 만난 이명지씨의 에세이집이다. 60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자신감 넘치는 삶의 철학이 담겨 있다. 저자는 60대가 돼서야 욕망이 자유로워졌으며, 생각에 자신이 생겼다고 고백한다. 그렇다. 몸은 노쇠할지언정 마음은 늙지 않는다. 괴테의 마지막 사랑처럼 노년의 사랑은 실현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뿐, 누구나의 로망 아닌가.
조선사 500년 동안 황진이만큼 인기 있고 매력 있는 여성이 또 있을까? 남정네 신분으로 태어난 사람이라면 마땅히 누구든 가슴 설레는 마음으로 떠올리는 이름 황진이, 황진이란 이름은 그 어떤 독한 술보다도 사람을 취하게 하고, 그 어떤 아리따운 꽃보다도 사람을 혹하게 한다. 황진이는 조선시대 중종 때 송도의 명기다. 그녀는 송도(개성)에서 살던 황 진사와 첩의 딸로 태어났다. 미모와 기예가 뛰어나서 그 명성이 나라에 널리 퍼졌다. 종실의 벽계수가 황진이를 만나기를 원하였으나 풍류명사가 아니면 어렵다기에 이달에게 방법을 의논했다. 이달이 물었다. “그대가 황진이를 만나려면 내 말대로 해야 하는데 따를 수 있겠소?” 벽계수가 대답했다.“내 그대의 말을 따르리다.” 이 달이 말했다.“그대가 소동(小童)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가지고 뒤를 따르게 하여 황 진이의 집 근처 루(樓)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타고 있으면 황진이가 나와서 그대 곁에 앉을 것이오. 그때 본체만체하고 일어나 재빨리 말을 타고 가면 황진이가 따라올 것이오. 취적교를 지날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일은 성공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오.”
벽계수가 그 말을 따라서 작은 나귀를 타고 소동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들게 하여 루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한 곡 탄 후 일어나 나귀를 타고 가니 황진이가 과연 뒤를 쫒았다. 취적교에 이르렀을 때 황진이가 동자에게 그가 벽계수임을 묻고 시조를 읊었다.“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벽계수가 그냥 갈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다가 그만 나귀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황진이가 웃으며 “이 사람은 명사가 아니라 단지 풍류객일 뿐이구나”라며 가버렸다. 벽계수는 매우 부끄럽고 한스러워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하는 남녀 간의 그리는 정은 다를 바 없음을 느끼게 한다. 일부종사할 수 없는 자기의 운명을 깨닫고 스스로 기생이 되기는 하였으나 한갓 탐화봉접(探花蜂蝶)이 되어 달려드는 같잖은 한량들의 노류장화(路柳墻花)가 되기는 싫었다. 시와 음률을 아는 풍류남아만을 가려서 사귀었던 황진이가 편력했던 남성중에서 가장 사랑했던 인물은 아마도 양곡 소세양 대감이었을 것이다. 시를 좋아했던 황진이가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요 시인이며 글씨 또한 소설체(松雪體)의 대가로 알려진 소세양의 명성을 듣고 흠모하여 오다가 이조판서까지 지낸 그가 관직에서 물러난 후 개성을 찾았을 때에 만났으니 연령의 차이는 많았겠지만, 높은 정신세계에서 교감했던 그들이었기에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소판서 세양을 받들어 이별한다./달빛 아래 오동잎 지고/서리 속에 들국화 노랗구나/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사람은 취하여 한없이 마신다/차가운 물소리 거문고소리/매화향기 피리와 어울리는데/오늘날 서로가 헤어진 후면 그대 그리움 강물처럼 한이 없으리.” 이 시는 황진이가 한 달 동안 사랑을 나누다가 한양으로 돌아가는 소판서 대감을 멀리 배웅하면서 강가의 한 누각에서 마지막 잔을 나누며 읊은 시이다. “오늘날 서로가 헤어진 후면 그대 그리움 강물처럼 한이 없으리”라는 끝 구절이 기약 없는 이별의 아픔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떠난 대감은 다시 소식이 없어 ‘월야사’라는 시로서 사무치는 그리움을 나타냈지만 지체 높은 양반은 기생을 다시 찾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황진이는 기다려도 오지 않는 임을 애초에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하고 있다. “어져 내 일이여 그릴 줄을 모르더냐/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그토록 황진이가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사람이 양곡 소세양이었다면 오직 정신적인 순수한 사랑으로 흠모하고 존경했던 인물은 화담 서경덕이었다. 당대의 고승 지족선사마저도 파계시켰던 황진이로서 마음만 먹으면 정복하지 못할 사내가 없을 것으로 알았지만 아무리 유혹해도 미동도 하지 않던 산림처사 서화담에게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고결한 인품에 감복하여 평생을 스승으로 모셨다고 전한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춘풍 이불 안에 서리서리 넣었다가/어른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그리움의 정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송도에서 동거하는 중에도 서울 본가에 올라간 이사종이 좀처럼 내려오지 않아서 애태우는 밤이 많았었나 보다. 독수공방하는 지루한 밤 그 긴 긴 시간의 한 토막을 잘라 두었다가 항상 짧게만 느껴지는, 임과 함께하는 밤을 길게 연장하고 싶다는 발상이야말로 황진이 다운 멋진 표현이 아닌가. 노년이 되면 그 감정 밭의 지력이 쇠해서 애정의 풀 한 포기 돋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생각한다’기보다 으레 그러려니 여긴다. 하지만 노년의 마음 밭에도 ‘청춘’의 영롱한 씨앗이 숨어있어서 싹을 틔울 기회만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