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주 북부의 한 제과점에서다. 옛 교과서에 나오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이름을 가진 ‘철수와 영희’는 그림속의 아이들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우리 부부와 마주 앉았다.
철수는 내 대학동기다. 반세기 전에 같은 전공을 공부하느라 4년을 함께 어울려 다닌 친구다. 그때 14명의 클래스메이트 중에 여학생은 5명, 나머지는 남학생들이었다. 여중과 여고를 다니며 여자들만의 학교생활을 해서 갑자기 옆에 앉은 수염 깔끔하게 밀고 온 남학생에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서로 편하게 적응하며 재밌게 지냈다. 철수는 커다란 눈에 늘 장난기를 띄고 모두에게 많은 웃음거리를 준 멋진 남학생이었다. 함께 헤르만 헤세를 공부하며 ‘아름다워라 청춘이여’ 했던 추억이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대학졸업후 뿔뿔이 흩어져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 모르고 지내다가 한 15년 전 동문회 어떤 분을 통해서 그가 버지니아주에 사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큰딸을 보러 워싱턴DC를 방문했을 적에 그를 만났었다. 세월은 우리를 변화시켰다. 우리는 더 이상 싱싱하고 철모르던 학생들이 아니었지만 과거를 공유한 덕분에 스스럼이 없었다. 우리는 수 십년의 삶을 가볍게 이야기하고, 각자 알고 있는 동기들의 근황을 나눴다. 커다란 눈으로 세상을 두리번거리며 이민생활 바빠도 예전처럼 밝게 웃던 그의 모습이 보기에 좋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페어팩스에 있는 큰딸네에 머물면서 가까운 센터빌에 사는 그에게 연락했다. 그는 33세 딸이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아들네는 가까이 살고 5살짜리 손주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혼 후 혼자 산다고 해서 그가 사는 동네를 찾아가는 내 마음이 어수선했다. 우리는 이제 노후가 아닌가. 그의 독신생활이 외로우리라 했는데 웬걸 그는 생글생글 웃는 여인을 옆에 끼고 성큼 제과점에 들어섰다.
우연일까? 아니면 필연일까? 나이 70에 이웃으로 만나 서로 의지하며 two peas in a pod로 꼭 붙어 다니는 두 늙은 젊은이들의 소꿉놀이는 주로 영희가 들려줬다. 우습지만 나는 반세기 전부터 알던 옛 친구 철수보다 생전처음 본 영희와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우리가 능청스럽게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는 대화에 내 남편은 양념처럼 끼어들었지만 철수는 그저 내 질문에 간단히 대답만 했다.
그들의 일상은 알면 알수록 재미있었다. 철수의 근래 취미는 요리다. 식당에서 한번 먹어본 음식을 집에서 더 맛있게 뚝딱 만들어서 영희를 놀라게 해준다. 덕분에 맛있는 음식 많이 먹어서 행복한 영희는 새벽에 잔치국수 먹으러 오라고 부르는 철수네로 기쁘게 달려간다. 따스한 눈빛으로 서로를 챙겨주는 이들은 마치 수십년 함께 산 우리 부부보다 더 다정하고 익숙해 보였다.
노후에 짝꿍이 된 철수와 영희는 사람살이 쉽고 어려운 일 다 체험했다. 그들의 성인 아이들은 독립해서 자신들의 삶을 사니 이제는 몸과 마음이 가볍다. 각자 힘겨웠던 삶의 여정을 지나며 익힌 지혜로 서로의 존재를 아낀다. 철수는 교회에 정기적으로 열심히 봉사하며 사업도 계속한다. 그리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주변의 산을 타는 철수는 알뜰살뜰하게 돌 봐주는 영희 덕분에 건강을 지키고 동심을 되찾았다.
내가 기억하는 젊고 팔팔한 철수가 이번에는 교과서 표지의 더 어린 철수로 바뀌었다. 그리고 책 표지에 고양이처럼 얌전한 영희는 노련한 호랑이로 철수를 보호하는 아마존 여장부 같았다. 얼마나 아름다운 노후인가. 평소 어린 사람에게도 반말을 못하는 내가 이제는 재밌게 반말을 하는 친구, 철수와 영희를 가졌다. 환하게 웃는 두 사람을 보면서 언젠가 읽었던 아파치족 인디언의 결혼 축시, ‘두 사람’이 생각났다.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 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춥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동행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두 개의 몸이지만/ 두 사람의 앞에는 오직/ 하나의 인생만이 있으리라./ 이제 그대들의 집으로 들어가라./ 함께 있는 날들 속으로 들어가라./ 이 대지 위에서 그대들은/ 오랫동안 행복하리라.”
이것은 관습적인 결혼보다 실질적인 삶의 진수를 누리고 사는 철수와 영희를 위해 내가 하고 싶은 축복의 기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