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지바고 영화를 감상하려 11월 마지막 일요일 저녁 5시에 로뎀카페에 갔다. 카페공간을 꽉 메운 사람들 속엔 아는 분들도 여러분 있었다. 물과 팝콘도 무료로 제공되었다. 3시간 이상 긴 영화, 모처럼 좋은 영화를 보니, 너무 좋고, 영화 페스티벌을 가을마다 열어 이민 생활에서 아쉬운 문화정서에 도움을 주려는 로뎀카페에 감사하다. 영화가 끝나고 나갈 때 관람객들은 성금함에 감사를 표했다.
닥터 지바고를 한국에서 60년대 말에 볼 땐, 아름다운 로맨스와 사랑의 갈등이 감동적이었는데 영화를 다시 보니 영화의 배경속에 러시아 혁명을 간접으로 경험한 기분이다.
어려서 어머니를 사별한 유리 지바고는 그레메코 교수 집에서 자라 의사가 되고 그레메코의 딸 토냐와 결혼한다. 제 1차 세계대전 전쟁터에서 지바고는 라라를 만나 군의관과 간호사로 같이 일한다.
군에서 나온 지바고가 가족과 함께 모스크바 자기 집을 찾아갔을 때, 집은 가난한 시민 여러 가정이 사는 빈민 굴이 되었고, 그들에게도 방 한 칸이 분배되었다. 땔감이 없어 밤에 울타리 판대기를 떼어 숨겨오다가 걸렸을 때 이복 형인 비밀 경찰 간부의 도움으로 풀려난다. 혁명은 세상을 바꾸어 갔다.
아내의 외가가 있는 시베리아로 가는 기차, 객차 한 칸 속에 50명 제한인데도 더 타려는 난민들의 아우성, 육이오 난리 때 가족 중에 기차를 못 타 헤어진 가족들의 아우성, 기차 지붕위에까지 기어올라간 우리의 경험을 상기시킨다.
시베리아 별장도 공산당들의 접근 금지경고로 못 들어가고, 버려진 농가에서 유리 지바고는 감자농사를 하며 아들과 아내와 행복하고 시를 쓴다. 유리는 떨어진 도서관에 갔다가 사서가 된 라라를 다시 만난다. 혁명 투사인 남편과 생이별하고 어린 딸과 사는 라라를 시베리아 농촌에서 다시 만나, 유리는 아내 토냐와 라라 사이에서 갈등한다.
도서관에서 오는 길에 유리는 빨치산에게 끌려가 부상병을 치료한다. 눈 덮인 허허벌판, 그는 도망쳐서 라라의 집을 찾고, 라라의 간호로 건강을 회복한다. 모스크바로 떠난 가족의 소식도 듣는다.
코마로프스끼, 라라 엄마의 정부였고, 라라를 겁탈하고, 제정 시대에도 명사였던 그는 혁명후에도 고위 공무원이 되어 라라앞에 나타난다. 혁명 투사였던 라라의 남편의 숙청소식과, 숙청의 물결이 라라에게도 덮칠 것을 알린다. 코마로프스끼는 새 임지로 가는 길에 라라와 그 어린 딸을 데려가서 그들을 살리겠다고 한다. 사랑의 결실로 임신 된 라라가 타고 가는 차가 점점 멀어지는 눈 덮인 허허 벌판을 창문 유리창을 깨고 바라보는 유리 지바고의 눈엔 눈물이 흐른다.
모스크바에 돌아온 유리 지바고가 전차를 타고 가다 길을 걷는 라라를 보고 전차에서 내려 따라가다 심장마비로 거리에 쓰러진다.
유리와 라라의 사랑, 로맨스나 불륜의 판단을 떠나, 그런 상황에 선다면, 그들처럼 사랑에 빠지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 아닐까? 당 간부가 된 유리의 이복동생이, 라라가 유리와의 사이에 딸을 출산했다는 소문을 듣고, 노동자 속에 타냐라는 여자애를 불러 그가 유리의 딸임을 확인하는 장면이 영화의 시작이다. 타냐는 부모에 관심 없이, 새 사회에서 당당하게 저들의 미래를 살아간다. 씨를 남기지 못하는 생물은 멸종한다. 사랑이 영원으로 이어지는 방편이고 그것은 자연의 은혜가 아닐까?
1971년 내가 미국 처음 왔을 때, 가사가 붙은 닥터 지바고의 영화 주제곡을 부르는 학생들이 있어 나도 즐겨 따라 불렀다. “Somewhere my love there will be songs to sing/ Although the snow covers the hope of Spring…”
영화의 사회적 배경은 러시아가 전제군주 정치체제에서 공산주의 사회 체제로 바뀌는 혁명의 과도기였다. 영화초기에 찬란한 무도회 장면들, 귀부인들과 귀족들이 악사들의 음악에 맞추어 우아하게 춤추는 사회, 전 국민중에 극소수가 즐기고 지배하는 전제군주 사회가 국민 모두가 굶주림 없는 사회로 변하는 과정이다. 풀 베는 낫과 노동자의 망치의 깃발을 휘두르며 배부른 돼지들을 살상하며 전제 군주체제를 바꾸었다. 지바고의 한 집이 다세대의 삶터가 되고, 떠나는 열차 칸 속에 아우성 치는 사람들, 사회 전원의 행복을 추구하는 혁명의 과정이었다.
영국의 국민 대헌장 (Magna Carta)과 찰스 1세 왕이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는 사건, 프랑스의 황제 루이16세가 “짐의 피가 불란서 국민의 행복을 강화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는 유언과 함께 단두대에 목이 잘리는 사건들은 영국과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인류가 수 만년동안 전제 군주 제도에서 온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 제도로 진화한 이정표다.
닥터 지바고 영화를 감상하며 나도 전제 군주국가에서 공산 사회주의 국가로 변하는 과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공산사회주의와 민주 자유시장경제의 대결은 둘 다 전제군주제도를 물리치고 난 뒤에 다가온 진화의 문제이고, 우리가 자유시장경제 제도 속에서 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