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도 젊은 층과 노년층 사이에 ‘황혼 육아’를 둘러싸고 뜻밖의 세대 갈등이 불거졌다.
노년층은 그간 미뤄뒀던 여행을 다니며 노후를 즐기려 하지만, 이제 막 육아를 시작한 젊은 층은 부모 세대가 손주를 봐주지 않는 데 서운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3일 폭스뉴스,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올해 33세인 크리스트자나 힐버그가 이같은 세대 충돌의 대표적 사례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바쁠 때마다 조부모님 집에 가서 지내는 게 일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자신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보니 이제 조부모가 된 부모님들은 정작 손주들을 돌봐주는 시간을 그만큼 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힐버그는 “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바쁘시면 당연하게 할머니 댁에서 지냈다”면서 “그런데 지금은 부모님께 내 아이들을 맡기려면 몇개월 전부터 여행 계획이 있으신지 여쭤봐야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처럼 꼬인 것은 젊은 층인 밀레니얼 세대와 노년층인 베이비붐 세대 사이에 여러 요인이 겹쳤기 때문이다.
우선 밀레니얼 세대는 이전과 비교해 눈에 띄게 임신과 출산을 미뤄왔다.
이 때문에 이제 노년층으로 접어든 베이비붐 세대는 역대 조부모 중 가장 ‘고령’에 손주들을 보게 된 세대가 됐다.
여기에다 이들 베이비붐 세대가 비교적 노후 대비를 ‘두둑하게’ 해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요인이다.
미 연방준비제도 조사에 따르면 지난 9월 현재 베이비붐(1946∼1964년 출생) 세대의 총자산은 78조 달러(10경 1천790조 원)에 달해 다른 세대보다 월등히 많았다.
세대별로 보면 1946년 이전 출생한 초고령 세대의 총자산은 18조7천억 달러, X세대(1965∼1980년 출생) 46조1천억달러, 밀레니얼 세대(1981년 이후 출생) 13조3천억 달러에 그쳤다.
실제로 베이비붐 세대는 지난 5월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 조사에서 다른 세대보다 더 많이 여행과 외식에 돈을 쓰는 성향인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미 심리학자인 레슬리 돕슨은 “이것은 매우 흔한 골칫거리”라면서 “베이비붐 세대는 인생의 4분의 3 지점에서 ‘맙소사, 내 삶이 거의 끝나가네’라고 느끼고 노년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자신만의 삶을 찾는 부모에게 밀레니얼 세대는 외면 당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전했다.
미국에서 자녀를 낳는 평균 연령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점도 주된 요인이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집계에 따르면 1970년에는 첫 자녀를 낳는 평균 연령이 21.4세였으나 2000년에는 27.2세로 올라갔다.
실제로 밀레니얼 부부는 주로 30대나 40대에 자녀를 낳으려는 추세이며, 이 때문에 베이비붐 세대는 이전보다 더 ‘고령’인 조부모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결국 밀레니얼 세대와 베이비붐 세대가 육아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갖게 되며, 베이비붐 세대의 경험과 조언이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느껴지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영리 단체 ‘미국인의 삶 조사 센터’의 대니얼 콕스는 예전에는 초보 엄마, 아빠들이 친척에게서 지혜와 도움을 구했지만 이제는 구글과 핸드폰 앱을 찾는다고 분석했다.
그는 “부모들에게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개발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산업이 있다. 아마도 여러분은 부모의 경험에 그만큼 의지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것들이 여전히 적절하다고 믿지 않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평생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온 베이비붐 세대가 이제는 자신만을 위한 독립을 바란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61세인 넬라 핸슨은 이제 11살이 된 첫째 손녀를 아기 때부터 헌신적으로 돌봤으나, 자신이 최근 재혼한 것을 계기로 둘째, 셋째 손주와는 그만큼 시간을 보내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핸슨은 “이전만큼 해주지 못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면서도 이제는 재혼한 남편과 자신의 삶을 우선으로 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