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을 때 고혈압, 치매 위험 더 높아
조기에 발견해 치료 땐 예방 가능
좋은 콜레스테롤 높을수록 효과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치매 환자는 약 5500만명으로, 해마다 1000만명씩 늘어나고 있다. 한국 65세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 환자고 이 중 여성이 61.7%(남성 38.3%)로 여성 치매 환자 비율이 압도적이다.
치매는 단순히 뇌 기능만 퇴화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 인구에서 장애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망 원인인 7위에 해당하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과거에는 치매를 노인이 되면 겪게 되는 노화 현상이라고 생각했으나, 치매의 원인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면서 예방이 가능한 뇌 질환으로 인식되고 있다.
아일랜드 골웨이국립대학교(NUI Galway) 연구팀이 세계 186개국의 치매 및 고혈압 발병에 관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치매에 대한 고혈압의 인구집단 기여위험분율(PAF)이 15.8%인 것으로 확인됐다.
인구집단 기여위험분율은 전체 인구집단의 질병위험도 중 특정 요인의 노출이 기여한 정도를 말한다. 즉 전 세계 치매 중 약 16%는 고혈압에 의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지역과 유럽의 PAF는 각각 18%와 17.2%로 고혈압에 의한 치매 발병률이 가장 높았고, 아프리카(16.5%), 아시아(15.1%), 오세아니아(14.8%) 순이었다.
중년 고혈압, 치매 위험 최대 76% 높여
치매 발병 위험은 고혈압 진단연령에 따라 달라지는데, 특히 젊을 때 고혈압을 진단받은 사람일수록 치매 위험도가 더 높다. 30~44세에 고혈압을 진단받은 경우 치매 위험도가 61% 높았고, 45~54세는 19%, 55~64세는 16%, 65~74세는 16% 높았다.
연구팀은 “30~44세의 젊은 나이에 고혈압을 진단받았던 치매 환자는 세계적으로 500만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약 300만명은 아시아에 거주한다”면서 “고혈압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면 치매의 상당 부분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WHO에서도 치매 글로벌 행동계획을 통해 치매 위험을 줄이기 위해 중년 고혈압 치료를 권장하고 있다.
미국심장협회(AHA)는 성명을 통해 “고혈압은 알츠하이머병과 혈관성 치매 모두의 위험인자이며, 중년의 고혈압은 노년기 인지기능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고혈압은 뇌혈관의 구조와 기능을 붕괴시키고 인지기능을 관장하는 백질 영역에 손상을 가해 알츠하이머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고혈압 치료가 혈관 건강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뇌 건강까지 보호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인 약 42만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에서 수축기 혈압 120㎜Hg를 초과하는 성인의 경우, 혈압이 10㎜Hg씩 높아질 때마다 치매 위험이 높아져 40~59세와 60~69세 연령대에서 각각 22%와 8%씩 치매 발병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혈압은 혈관성치매와 알츠하이머병 모두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 수축기 혈압이 10㎜Hg씩 상승할 때 혈관성치매 위험은 31%(40~59세)와 16%(60~69세) 높아졌으며, 알츠하이머 위험은 50~59세 구간에서 약 20% 높아졌다. 특히, 중년(40~59세) 고혈압 환자(수축기 혈압 140㎜Hg 이상)의 경우 치매 위험이 76%까지 높아질 수 있지만, 혈압을 120~139㎜Hg(수축기 혈압)로 건강한 수준으로 유지하면 치매 위험을 31%까지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혈압을 조절했을 때 실제로 치매 위험이 낮아진다는 최신 연구결과가 나왔다. 호주 UNSW대학교 연구팀에서 5개의 임상시험에 참가한 고혈압 환자 28008명의 데이터를 다중회귀분석한 결과, 수축기 혈압 10㎜Hg, 이완기 혈압 4㎜Hg를 낮추면 치매 발병 위험이 13% 더 낮아졌다.
약 4.3년에 걸쳐 실제 고혈압 치료를 받는 환자들의 치매 발병 위험을 위약 그룹과의 비교했을 때, 수축기 혈압 167㎜Hg 이상 그룹에서는 치매 발병 위험률이 7% 낮아졌고, 147~167㎜Hg 그룹과 147㎜Hg 이하의 그룹에선 각각 18%와 23%가 낮아졌다. 특히 치매 위험을 낮추는 고혈압 치료 효과는 환자의 나이가 젊을수록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HDL, 알츠하이머 원인 물질 생산 막아
좋은 콜레스테롤이라고 불리는 HDL은 고혈압을 예방하고 치매 예방에도 도움된다. HDL은 혈관이 좁아지고 막히는 등의 동맥경화를 예방하고, 혈관 확장 및 항혈전 효과로 고혈압 예방과 심혈관질환 예방에 도움을 주게 된다.
실제로 일본인 150만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HDL이 높아질수록(20~99㎎/dL) 고혈압 발병률이 낮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인 26만여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HDL 콜레스테롤 수치 35㎎/dL 미만을 기준으로 35~44㎎/dL일 때 심혈관질환 발병 위험은 남녀 각각 34%, 31% 더 낮아졌고, 60㎎/dL 이상일 땐 각각 66%, 49% 더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HDL은 콜레스테롤을 감소시켜 혈관이 막히지 않도록 해 뇌졸중을 예방함으로써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연결되는 혈관성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 또 뉴런 세포막의 콜레스테롤양을 감소시켜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이 되는 아밀로이드 베타(Aβ)의 생산을 막을 뿐만 아니라, 응집되거나 뇌에 쌓이는 것을 막고 뇌에서 생성되는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일본에서 19년간 진행된 연구에서 중년에 HDL 수치가 60㎎/dL, 70㎎/dL 이상이었던 사람들은 노년에 경도인지장애 발병 확률이 각각 20%와 50% 감소했으며, 중년기 HDL 콜레스테롤 수치가 50㎎/dL 이상일 땐 노년기 치매 발병률이 62~65%까지 낮아졌다.
류장훈(ryu.jangh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