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았던 젊은 시절은 가고, 은퇴생활을 하는 평범한 이웃 동포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끔은 영화 보는 것처럼 감동을 받기도 하고 배우기도 한다.
교회 점심 시간에 한 장로님이 들려준 은퇴후에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는 이야기가 참신했다. 그분은 회계사로 큰 회사에서 일하다 정년 은퇴후에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현장에서 한국인의 성실성을 드러내는 이야기에서 내가 몰랐던 부분이 참신하다.
은퇴 후 한동안 장로님은 매일 아침 일어나 버릇처럼 텔레비전 뉴스를 보았다고 한다. “여보, 당신 맨날 티비만 보고 있으면 몸도 약해지고 빨리 늙지 않을까요? 아직도 건강 할 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게 어때요?” 아내가 그렇게 말 할 때 그는 못 들은 척했다고 한다. 며칠 있다가 같은 소리를 들었을 때도 못들은 척했지만 그의 생각 속에 ‘그래 아내 말이 맞아. 이젠 쉴 만치 쉬었으니 뭔가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세번째 아내가 그런 말을 했을 때, 인터넷에서 일자리를 찾아보니 몇몇 회사에서 일꾼을 찾고 있었다. 이메일로 신청서와 이력서를 보내라고 해서 홈디포에 파트 타임 일을 신청해 보았다. 서류 전형에서 뽑혔으니, 인터뷰를 오라고 해서 갔다.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일주에 25시간 일을 시작했다.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2년이 가고, 급료도 오르고, 우수사원으로 프로모션도 되고, 상금도 받게 되었다고 한다. 특별히 잘 하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우수사원으로 환영받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일을 다시 하니 생활에 리듬도 좋아지고, 여분의 수입으로 여행도 간다고 했다. “어떻게 우수회사원이 되었어요?” 물어보았다. 그는 다음 과 같은 두가지 이유일 거라고 대답했다.
“미국 직원들은 몸이 조금 불편하거나, 집안에 일이 있으면 회사에 통고하고 일을 안 해요. ‘Take granted’의 태도가 있어요. 나는 일을 빠진 적이 없어요. 병가를 한 시간도 쓴 적이 없어요. 수퍼바이져의 입장에서 보면 오늘 당장 일 못 나온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우는 번거로움이 있어요. 나보고 빈 자리를 채워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면 별일 없으면 일했지요. 내 상사는 그런 나에게 고맙다고 여러 번 말 하더라고요.”
그가 일하는 냉장고, 디시워셔 등 가전(Appliance) 섹션의 판매실적이 자동적으로 계산되어 월마다 보고되는데, 그가 최고의 판매기록으로 자주 나왔다고 한다. 그의 판매기록과 병가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맡은 근무시간을 한번도 이탈하지 않았고, 빈 자리도 메워준 덕분에 보상과 우대를 받는다고 한다.
병가라는 것은 한달에 며칠씩 병으로 출근을 못해도 급여가 지불되는 제도이다. 나도 전에 근무하던 대학에서 은퇴할 때까지 30년동안 단 하루도 병가를 이용하지 않았다. 일 못할 정도로 병을 앓지 않은 것에 무한 감사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은퇴할 때 쓰지 않은 병가 일수에 따라 돈이 나와 기념으로 차를 산 이야기를 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병들고 죽고 그랬는데, 나는 그동안 일을 할 수 있었으니, 하나님의 은혜지요.” “그것도 우수한 사원으로 일을 하여 포상을 받기도 하고요!” “하나님의 은혜를 찾아 감사하면 끝이 없어요.”
“장로님이 일하는 곳에 다른 한국인들도 일을 하나요?” “몇 분이 일하는데, 한국인들은 모두 열심히 일해요. 한국인은 모두 성실합니다.” 왜 한국인들은 성실할까? “미국 직장에서 처음 일 할 때는 언어와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려 더 열심히 뛰었잖아요. 지금은 언어장벽도 없고 문화적인 경험도 그리고 전문적인 경험이 있기에 적응이 쉬워진 점도 작용하는 데다가, 직장에서 오랫동안 성실하게 일하던 버릇까지 생겼으니 한국인의 근면성, 성실성이 알려지나 봐요.”
최근에 한국을 다녀온 사람들의 경험담 중에 지갑이나 핸드폰을 택시나 버스에 놓고 내렸는데, 전화해서 정류장 보관소에 가서 찾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몇 십년 전에는 소매치기에 공중 화장실에 휴지가 없어 당황했지만, 지금은 소매치기도 없고 어느 나라보다 깨끗한 공중화장실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지능적인 민족이라는 말도 들었다. 세계 최강국 대열에 들어선 나라라는 말도 들었다.
“엽전들은 할 수 없어!” 문득 그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1950년대 구청에서 호적초본 뗄려면 담뱃값을 주어야 했고, 신원 조사받을 때도 돈봉투가 오갔다. 취직할 땐 빽이 있어야 했고 돈봉투가 오갔다. 매관 매직은 오랜 전통이었고, 빽이 없으면 사거나 거짓으로 꾸며 일을 처리한 경험을 통해, 많은 국민들이 능숙하게 적응하며 길들여졌다.
그런 길들여진 버릇이 가끔은 미국에서도 작동하여 효과도 보지만, 사회를 오염시킨다는 보고도 있다. 꼰대인 나는 어떤 가? 매일 급변하는 세상에서 옛날 버릇만 고집하다 안되면 망할 세상이라 원망만 할 것인가? 변하는 환경에 적응 못하는 생물은 멸종되다고 하는데, 나도 배우고 변하도록 노력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