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 캠프 다니며 정체성 고민…”두 나라 모두 도움”
“양모는 내가 어릴 때 방학 때마다 한국문화 캠프를 보내는 등 한국과 계속 연결될 수 있게 도와줬어요. 양모의 은혜에 보답하고, 내가 태어난 나라를 소개하고 싶어 한국이 처음인 양모와 함께 왔어요.”
미국 연방 상원의원실에서 18년째 일하는 켈리 보이어(한국명 최연화·39) 보좌관은 1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과거 5번의 방한과 다르게 이번 방한이 자신에게 특별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재외동포청이 주최한 ‘2023 세계한인입양동포대회’에 참가 중인 보이어 보좌관은 오는 14일 대회가 끝나면 양모와 함께 곧바로 제주로 건너가 친모를 다시 만날 계획이다. 친모는 제주에서 살고 있다.
그는 미국으로 입양된 후 37년 만인 지난해 4월 친모와 외할머니 등 친가족과 극적으로 상봉했다. 원래 2019년에 먼저 친가족을 찾았지만, 코로나19 확산 상황으로 뒤늦게 만나게 됐다.
보이어 보좌관은 “친모가 처음 만났을 때 ‘정말 미안하다’고 죄책감 섞인 말을 계속해서 마음이 아팠다”며 “외할머니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데 미국의 양할머니만큼 친밀함이 느껴져서 신기했다”며 상봉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항상 친모가 누굴지 궁금해했는데 친가족을 어렵게 찾을 수 있게 돼서 감격스러웠다”며 “친모에 대한 분노나 원망은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제가 한국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친가족과 전화 대신 가끔 SNS를 통해 문자만 주고받는 방식으로 연락하며 지낸다”며 “한식을 좋아하는 데 제주에 가서 흑돼지 고기를 먹고 두 엄마와 함께 여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1984년 1월 4일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친모에 의해 보육원에 맡겨졌다. 이듬해 8월 한국사회봉사회(KSS)를 통해 미국 미네소타주의 한 가정에 입양됐고, 목수인 양부와 회계사인 양모 사이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3살 터울인 그의 남동생도 양부모가 입양한 한인이다.
보이어 보좌관은 노스다코타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6년 바바라 박서 상원의원실 인턴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여러 직책을 거쳤다.
그는 2020년 비영리단체 전미아시아태평양정치공공업무협회(NAAPPPA)가 선정한 ’40세 이하 리더 4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정치인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다른 한인 입양인들을 위한 봉사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는 2016년에 뿌리 찾기를 시작했다. 입양기관을 통해 확인한 친가족의 옛 주소로 두세차례 편지를 보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2019년 입양인 지원 단체 해외입양인연대(GOAL)와 아동권리보장원 입양인지원센터 등의 도움으로 친가족의 거주지를 확인해 연락을 취했고, 마침내 친가족과 연결될 수 있었다.
보이어 보좌관은 인터뷰 도중 동요 ‘산토끼’ 일부 소절을 서툰 한국어로 노래했다. 그가 어릴 적 한국 캠프에서 배운 것으로, 이 노래를 할 때는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그는 “내 정체성의 일부는 미국인이지만 한국은 내가 태어난 나라, 내게 생명을 준 나라이기 때문에 나와 한국은 복잡한 관계”라며 “한국에서 자라지 않았지만 내 안에 한국인의 피가 내재해 있다는 것을 느낀다. 두 나라 모두 오늘의 나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입양인이 뿌리 찾기를 시도했을 때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서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지 않고 성장하는 것은 더 큰 손실이 될 수 있다. 나와 내 나라를 제대로 알 기회는 가져보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