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15년 차 간호사 이모씨는 지난 10월 일본 오사카로 가 미국 간호사 면허 시험을 치르고 왔다. ‘엔클렉스(NCLEX)’라고 불리는 이 시험은 해외에서만 응시가 가능하다. 한국 간호사들은 주로 가까운 일본에서 응시한다.
이씨는 서류 접수 비용으로만 508달러(한화 65만 원)를 썼다. 교통비와 교재비 등을 더하면 시험을 위해 쓴 돈은 150만원을 훌쩍 넘는다. 응급실 간호사인 이씨는 “노동 강도는 센데 임금이 지나치게 낮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독하게 시험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미국 취업을 준비하는 간호사들이 지난 2년간 8350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것에 비해 근무여건이 좋고 연봉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2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엔클렉스 준비를 위해 복지부에 간호사 자격 영문 증명서 발급 등을 신청한 건수는 지난 1월 1일부터 이달 20일까지 3907건(명)으로 집계됐다. 관련 전자 집계를 시작한 2022년에는 4443건(명)이었다.
간호사 자격 영문 증명서 발급은 미국 간호사 취업을 준비하는 첫 단계다. 복지부는 응시자의 접수를 받아 영문 증명서를 발급한 다음 관련 서류를 모아 압인해 미국 뉴욕교육국(NYSED)과 같은 미국 담당 기관으로 보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미국 간호사 자격을 따기 위한 문서 생산과 발송을 도와주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간호사들 “처우 개선 시급”
한국 간호사가 고국을 떠나는 이유로는 열악한 근무 조건이나 낮은 처우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 5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에 따르면 간호사 4명 가운데 3명꼴(74.1%)로 최근 3개월 사이에 이직을 고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직 고려 사유로는 ▶열악한 근무조건과 노동강도(43.2%) ▶낮은 임금수준(29.4%)이 꼽혔다.
5년 차 미국 간호사인 30대 강모씨는 “미국에서는 12시간씩 주3일 일 하기 때문에 자기 시간이 많이 난다”며 “한국에서 온 간호사들은 대체로 업무에 크게 만족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대한간호협회(간협) 관계자는 “미국은 급여 수준이 한국과 아예 다르고 여건도 좋아 미국 간호사를 선택하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해외 유출 등 현장을 떠나는 간호사가 적지 않으면서 정부는 간호 인력 수급에 나선 상태다. 복지부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임상 간호사 수는 4.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2020년 기준) 8.0명보다 한참 낮은 수준이다. 간호사 업무 강도가 지금의 80%로 완화될 때 2035년까지 간호사 5만6000명이 부족할 것으로 정부는 예상한다.
간호사 수급난에 따라 지난 11월 꾸려진 복지부 ‘간호인력 전문위원회’에서는 간호대 입학정원을 한시적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2019년부터 매년 700년씩 정원을 늘려왔는데, 이 인원도 모자란다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2025학년도 입시 때 1000명을 늘리는 게 목표”라며 “이달 말에서 내년 초쯤 정원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간호대 입학 정원은 2만3183명이다.
간협 관계자는 “매년 정원을 700명씩 늘려왔어도 현장 이탈 간호사가 너무 많아 이전 정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도 같다”며 “처우가 괜찮은 병원이 수도권에 몰려있는 등 지역 의료 공백이 심각한 상황이다.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채혜선.정은혜(chae.hyes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