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인 이민 120년을 맞은 올해, 애틀랜타 한인사회도 굵직굵직한 일들이 많았다. 이들은 모두 오랜 시간 공들인 정치력 신장 노력과 기업 진출 및 투자의 결실이었으며, 동시에 이민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의 표출이기도 했다.
본지 선정 2023년 10대 뉴스(12월 22일자 A-1,2면)에 드러난 사건 사고 및 여러 현상들을 바탕으로 애틀랜타 한인사회의 빛과 그림자, 새해 과제 등을 분야별로 심층 분석해본다.
◆글 싣는 순서
① 정치력 신장과 ‘새 정치'(상, 하)
② ‘그리스도의 군사들’ 사건과 이민사회(상, 하)
‘소수계 대변’ 한인이 앞장선다
인구 수만으론 한계…투표율 ‘숙제’
언어장벽보다 가짜 뉴스가 더 위험
2023년은 한인의 정치적 영향력이 본격 확대되는 원년이 됐다.
2016년 샘 박 주 하원의원이 하원에 입성한 지 7년 만에 홍수정 하원의원이 올해 첫 임기를 시작하며 여성 최초 주 하원의원 기록을 썼고, 이어 존 박 시의원이 브룩헤이븐 시장으로 당선되며 ‘풀뿌리 정치’에서 강한 한인 단결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 빠르게 커지는 소수계 목소리
미국에서 소수계 커뮤니티의 정치력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는 인구수(센서스)와 투표율이다.
비영리 법률정책센터 정의진흥협회(AAAJ) 애틀랜타지부의 제임스 우 대외협력부장(사진)은 지난 1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조지아 주 한인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아시안을 모두 통틀어서야 4%대에 머물 뿐”이라며 “인구수 증가에만 기대서는 변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시민권 획득부터 유권자 등록, 관리, 투표 참여 전 단계에 대한 커뮤니티의 관심이 있어야 구체적 성과가 나온다는 얘기다.
AAAJ에 따르면, 지난 2020년 대선 및 주지사 선거에서 조지아 한인 투표율은 10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했다. 우 부장은 “2015년 단체에 합류해 2년이 지나니, 처음 아시아계 의원(비 응우옌 주 하원의원)이 나왔다”며 “현재 11명으로 늘어난 아시아계 의원을 보면 정말 변화를 체감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과거, 마트나 노인 아파트를 방문해 선거 독려 캠페인을 벌이면 한인들 대부분이 정치적 목적을 의심했는데, 선거 참여가 보편화되자 ‘어느 당 소속인지’ 묻는 일도 사라졌다. 역사상 가장 ‘다양한’ 올해 조지아주 의회는 전체 236명 중 비백인 의원이 83명이다.
비영리 법률정책센터 정의진흥협회(AAAJ) 애틀랜타지부의 제임스 우 대외협력부장. 본인 제공 사진
▶’나와 비슷하게 생긴’ 정치인
정치와 권력이 가지는 ‘비주얼’, 시각적 측면의 위력은 생각보다 크다. 존 박 브룩헤이븐 신임 시장은 3선 시의원 경험을 통해 달성한 ‘녹색 도시’를 주요 성과로 내세워왔지만, 한인 커뮤니티에서 그는 ‘소녀상 건립자’로 가장 유명하다. 위안부 소녀상이나 기림비는 가장 대표적인 미주 한인의 ‘시각 상징물’이다. 정치 이념, 지역, 세대, 종교를 불문하고 한인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 기억을 물성으로 빚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한인’ 정체성의 모호함에 대한 회의가 커지는 상황에서도 우 부장은 “나와 비슷해 보이는, 그래서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정치인을 가지는 경험은 많은 이들에게 위안이자 모티브가 된다”고 단언했다. 같은 인종의 대표자를 가지는 경험이 주는 정치적 효능감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
한국계 정치인과의 만남에서 한인이 가장 크게 공감하고 동요하는 지점 역시 그가 한인으로서의 성장 이야기를 공유할 때다. 짧은 ‘한국어 인사’도 큰 호응을 받는다.
▶’IT 기술’과 싸워야 할 선거
내년 대통령 및 연방 의원 선거를 앞두고, AAAJ가 새롭게 집중하는 문제는 언어의 오염이다. 언어 장벽은 이민자가 주류 사회와 접촉할 때 흔히 겪는 고질적 문제지만, 최근의 양상은 조금 다르다.
대선을 앞두고 조지아로 쏠리는 전국의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위조 민주주의’ 속 판치는 가짜 정치 뉴스가 카카오톡 등 주요 한인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퍼지기 쉬워졌다고 분석한다.
이전에는 언어적 접근성이 ‘통역’과 직결됐다면, 이제는 ‘검증’이 필요한 시대다. 이민사회가 생성형 인공지능(AI)이 개입된 선거전에서 더욱 취약해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선거 날짜, 장소가 잘못 기재돼 퍼지는 경우 영어가 불편한 이들은 진위 확인을 못 한 채 속는 수밖에 없다.
우 부장은 “과거 투표용지나 안내문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통역관을 투표소에 배치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영어를 엉터리 한국어로 번역한 ‘가짜뉴스’가 이민자 사회의 큰 문제로 떠올랐다”고 진단했다.
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