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자살을 했다. 왜 자살을 했을까? 자살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까? 우리 주변에서 자살이 자주 일어나 자살을 해도 우리의 감정은 둔해지고 메말라져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스산하다. 영국 시인 존 던의 시에서는 우리는 섬이 아니고(No man is an island)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한국이 자살율이 높은 나라라는 통계자료는 반갑지 않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네번째로 자살율이 높다. 한국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작년에 통계에 잡힌 자살자 수는 1만2906명이었고 남자의 자살자 수(9019명)가 여자의 자살자 수(3887명)의 두 배 이상 많았다. 자살 시도를 하는 사람은 여자가 더 많지만, 치명적인 자살 방법을 사용하는 남자는 자살 성공율이 높아서 남자 자살자 수가 여자 자살자 수보다 더 많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더 잘 살게 되었지만, 정신적으로 더 각박한 사회에 사는지, 자살율(1990년 3251명, 2000년 6444명)은 계속해서 세계 상위권에 떡하니 자리잡고 내려오질 않는다. 자살에 대해 얘기는 불편하지만 논의를 피하기만 할 수는 없다.
자살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있어도, 자살을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은 적고, 자살을 시도해도 성공하는 사람은 적다. 겁쟁이나 자살을 시도한다고 말하지만 자살에 성공하려면 겁쟁이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가 죽어’라는 말은 누구에게도 애당초 하지 말아야 한다. 자살은 선택할 수 있는 고려 사항이 아니니까.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자살을 왜 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숨막히는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은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답을 찾으려 하고, 안타깝게도 그 답이 자살이다. 현재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끝내기 위해, 너무 아픈 현실에 대한 탈출 도구로, 희망없는 캄캄한 미래 앞에서 자살을 택한다. 자살은 강요와 선택이 뒤섞여 있다. 어떤 때는 자신을 주위로 부터 끊어내려고 자살을 선택 한다. 곪은 상처를 도려내듯, 나 하나만 없어지면, 나로 인해 발생한 주변 사람들의 정신적 고통을 덜어줄 수 있겠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해진 짐을 덜어주기 위해, 이만 빨리 덮자라는 생각으로 이 방법을 쓰기도 한다. 자신이 부끄럽고 죄책감으로 자살을 하기도 하고, 부당함에 대한 소리없는 항거로 자살을 하기도 한다. 공통점은 자살하려는 사람에게는 대안이 안 보이고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끊고 싶고 이 상황을 종료하고 싶다이다.
자살 전문가인 임상심리학자 조이너(Joiner) 박사가 그의 홈페이지에 올려 놓은 자살의 경고 신호 열 가지는, 길지만 다음과 같다.
술이나 약물의 사용이 늘어난다/수면, 식사 습관이 바뀐다/희망이 없거나 마음이 텅빈 감정을 토로한다/불안하거나 안절부절한다/기분 변화가 심하다/과속 질주와 같은 충동적이거나 무모한 행동을 한다/유서를 쓰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개인 물품을 준다/주변 사람들과 연락을 끊거나 격리하려고 한다/죽고 싶다는 말을 한다/죽는 방법에 대해 조사를 한다.
자살을 막는 방법은 인간 관계의 연결과 사랑이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짐이 아니고 기대고 싶은 언덕이고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시켜 주는 게 필요하다. 봉착한 문제가 풀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 힘을 합쳐 풀 수 있는 문제로 바꾸어야 한다. 사람은 실수를 한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완벽하려고 하고 자신의 높은 기준치를 유지하려고 하면 해결책은 자살밖에 없어 보일 때, 주변 사람들이 힘이 되어 주고 따뜻한 관심으로 지지자가 되어 주어야 한다. 자살하지 말고 살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