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기운이 드는 날이면 더욱더 생각나는 것이 뜨끈한 온천탕이다. 친정식구들은 모두 온천욕을 좋아하고 즐겨 찾는 편이라 미국생활 중 많이 아쉬웠던 것이 뜨끈한 온천물에 몸 한번 제대로 담궈 보지 못하는 것이었는데 오클라호마에 살고 있는 동생이 좋은 곳을 찾았다며 내가 사는 곳에서 7시간 떨어진 아칸사스에서 만나자고 제안을 했다. 자연 온천수가 나와 따뜻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며 좋아했다.
비즈니스를 하는 동생은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만나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엔 동생이 먼저 3일 정도 쉬는 동안 함께 좋아하는 목욕관광을 하자고 권한 것이다. 우리 가족은 미국 생활 중에도 일년에 두어 번 정도는 연례행사라도 하듯 그나마 가까운 애틀랜타로 사우나를 즐기러 다녔는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그 이후로 대중탕을 이용할 수 없어 사실상 발길을 뚝 끊어 버린 참이었다.
아들과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뜨끈한 온천물에 몸을 담글 생각에 먼 길을 신나게 달려갔다. 동생네 가족과 만나 즐거운 저녁 식사를 하고 크리스마스에 맞춰 화려한 불빛으로 늘어선 밤거리를 걸었다. 차가운 밤 공기는 꽤나 자극적이었지만 서로 팔짱을 꼭 끼고 멋스럽게 장식된 트리와 상점들 사이에서 밤의 자유를 누려보았다.
자연 온천수가 뿜어져 나오는 곳이라 그런지 군데군데 뜨거운 연기가 바닥에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온천관광지의 역사를 말해주듯 도로 한쪽으로 늘어선 건물들이 한때는 왕성하게 관광객을 맞이 했으리라 싶은데 지금은 두 군데 만 운영을 한다 하니 이곳마저 문을 닫게 될까 싶어 아쉬움이 컸다. 우리가 아는 한국식의 목욕탕과는 달리 건물 자체가 작은 박물관 같아 보이기도 하고 지어진 모양새가 독특하고 아름다웠다.
수영복 차림으로 입욕을 해야 하니 오히려 들어 가기 전에 깨끗이 씻고 살짝 물에 몸만 담그다가 시원한 음료 한잔 마시며 우아하게 앉아 있어야 하는 건가? 동생과 나는 깔깔대며 웃었다. 한국식 온천은 발가벗고 자유롭게 온탕, 냉탕을 오가며 땀 빼고 난 후 개운하게 씻고 나오는 식이라 들어갈 때는 꼬질꼬질 해도 아무렇지 않게 목욕 바구니 하나 들고 들어가면 되는데 샤워를 하고 온천을 간다는 게 우스워서 역시 한국이 좋아… 하고는 수영복을 챙겨 나왔다.
‘Quapaw Bath & Spa’ 앞에는 이미 길게 줄지어 선 사람들로 가득했다. 앞쪽에선 가이드 하는 여성분이 물의 성분과 효능, 오랜 전통과 이용상 주의사항 등을 열심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앞에 선 노부부는 얼마나 점잖은 모습인지 목욕을 하러 가는 사람인지 무슨 명소에 관광을 하고 있는 중인지 모를 정도로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듣고 계셨다. 뒤들 돌아보니 어느새 우리 뒤로도 줄이 한참이나 이어져 있었다. 어떤 중년의 아주머니는 이미 씻고 나온 것처럼 모양새가 깨끗하고 화장까지 곱게 마치고 서 있으니 정말 낯설고 어색한 기분이었다. 한참 설명을 끝낸 가이드는 수를 세어 가며 사람들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수영복을 갈아입고 조심스럽게 온천탕을 찾아 들어가니 각기 다른 온도의 탕이 여러 개 있었고 이미 곳곳마다 사람들이 들어가 앉아 있었다. 우리도 가장 뜨거운 탕을 찾아 살며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뜨겁고 찌릿한 미네랄 풍부한 온천물은 수영복 사이로 드러난 살갗을 흥분하며 떨게 하였다. 내 몸이 기억하는 짜릿한 물맛이었다. “좋다…”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여러 사람이 가장자리로 빙 둘러 앉아 소곤소곤 이야기 나누며 가끔씩 물속으로 몸을 깊이 넣었다 나오는 정도의 온천욕은 조금은 아쉽고 만족스럽진 못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하며 동생과 나는 얼굴이 발그스레 되어 질때까지 뜨거운 탕에서 그동안 쌓아 둔 수다를 조용히 나누었다.
아칸사스의 온천탕은 그렇게 2시간의 짧은 물맛을 보는 걸로 끝났지만 멀리 떨어져 사는 동생과 나에겐 바쁘고 지친 일상을 잠시 벗어나 반갑게 만나 온천욕을 즐기며 수다 떠는 자매의 새로운 약속의 장소가 되었다. 내년 이맘때쯤 다시 동생을 만나게 될 온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