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항복하거나 패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감과 힘을 길러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의 국토를 지켜 낼 것입니다.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상륙지점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들판과 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언덕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군이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를 돌파해 프랑스를 향해 파죽지세로 진격하고 있던 1940년 5월13일 ,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은 의회에서 연설했다. 그 며칠 전 대독(對獨 )유화론자이던 챔버레인을 계승하여 전시내각의 수상이 된 처칠은 이 연설에서 “나는 피, 수고,, 눈물, 그리고 땀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패배의 치욕을 승리에 대한 굳은 의지로 바꾼 이 연설로 인해 연합군은 다시 하나가 되었고, 이후 5년간 전쟁의 고통을 함께 견디며 마침내 승리할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 개전 초기 영국군과 프랑스 연합군 40여 만명이 프랑스의 북부 해안 덩케르크(프랑스 지명 됭케르크)에서 독일군에 포위돼 고립되었다. 독일군이 아르덴 산림지대를 돌파하고 뫼즈 강을 도하하면서 연합군이 예측치 못한 대규모 우회 포위 기동으로 주력부대가 모조리 섬멸될 위기에 빠졌다. 연합군은 아라스에서 반격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독일군에 완전히 포위되고 만다. 하인츠 구데리안의 독일 기갑부대가 퇴로가 없는 연합군을 짓밟기 위해 빠른 속도로 진격하고 있었다. 영국군은 본토에 남은 전력을 최대한 빨리 보내 구원코자 했으나, 그 시점에서의 구원군 파견은 포위망에 갇혀 포로가 될 병력만 늘려주는 꼴이었다. 그때 연합군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단 하나. 세계 전사상 유례가 없는 사상 최대규모의 해상탈출 작전이었다.
독일군 최선두 부대는 사기충천했다. 하인츠 구데리안은 5월 22일, 예하 1기갑사단에 칼레로, 2기갑사단에게 불로뉴로, 그리고 10기갑사단은 운명의 땅 됭케르크로 각각 진격할 것을 명령했다. 이들 3개 항구도시는 포위망 안에 있던 연합군이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항구였다. 영국군은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에 협력을 요청해서 선박을 최대한 긁어모았으나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영국 정부는 선박 징발령을 내렸다. 당초 예상보다 더 많은 선박들이 몰려왔다! 화물선, 유람선, 트롤어선 등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선박에서는 선주와 항해사들이 “햇병아리 놈들에게 내 배를 절대 맡길 수 없다!”라면서 배를 손수 몰고 됭케르크 앞바다로 몰려들었다.
결국 철수 작전은 성공했지만, 영국군이 프랑스에 갖고 들어갔던 화포 등 중장비와 차량은 모두 버리고, 수십만 프랑스 병사는 됭케르크 포위망 안에서 포로가 되었다. 영국 구축함 6척과 프랑스 구축함 3척은 9척의 대형 선박과 함께 격침되었고, 구축함 19척이 손상되었다. 연합국 선박 200척 이상이 침몰했고, 같은 숫자의 선박이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됭 케르크에서 영국 병사의 구출은 영국 국민의 사기를 고양시켰고, 철수한 그들은 나중에 독일 침공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역사는 돌고 도는가.
그로부터 84년 후, 한국의 한동훈이 처칠의 연설을 꺼냈다. “우리는 호남에서, 영남에서, 충청에서, 강원에서, 제주에서, 경기에서, 서울에서 싸울 겁니다. 그리고, 용기와 헌신으로 반드시 이길 겁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6일 비대위원장 수락연설에서 말했다. “우리는, 상식적인 많은 국민들을 대신해서,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그 뒤에 숨어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운동권 특권세력과 싸울 겁니다. 그리고 용가와 헌신으로 반드시 이길 겁니다. 여러분, 동료시민과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빛나는 승리를 가져다줄 사람과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까? 우리 모두가 바로 그 사람들이고,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함께 가면 길이 됩니다. 우리 한번 같이 가 봅시다.”
한동훈 이전에 이런 연설을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그의 연설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내용(연설문)과 형식(전달력) 면에서 좋은 연설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동훈의 연설은 그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시작된다. “ 어릴 때, 곤란하고 싫었던 게 ‘나중에 뭐가 되고 싶으냐, 장래희망이 뭐냐’라는 학기초마다 반복되던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뭐가 되고 싶은 게 없었거든요. 대신, 하고 싶은 게 참 많았습니다. 좋은 나라 만드는데, 동료시민들의 삶을 좋게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그 마음으로 살았고, 그리고 지금은 더욱 그 마음입니다.”
이처럼 연설의 내용이 말하는 이의 정체성과 일치할 때 청중은 연설자에게서 진정성과 호감을 느낀다. 그는 또 딱딱한 정책을 소개하기보다 비전을 제시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핵심어는 ‘용기’ ‘헌신’ 등이다. 선민후사(先民後私)라는 용어도 신선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치인이나 진영의 이익보다 국민 먼저입니다. 선당후사라는 말 많이 하지만, 저는 선당후사 안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신‘선민후사’해야 합니다. 분명히 다짐합시다. ‘국민의힘’보다도 ‘국민’이 우선입니다. 오늘 국민의힘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정치를 시작하면서, 저부터 ‘선민후사’를 실천하겠습니다.” 12분 남짓한 연설에서 그는, 정치의 본질적인 역할과 기능이 무엇이고, 우리의 정치가 왜 이 지경이 됐는지, 그리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