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2류, 정치는 4류…’.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5년 4월13일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당시 한국사회의 정곡을 찌른 발언으로 큰 충격을 줬다.
그로부터 28년이 지났다. 이 회장이 2류라고 질타한 기업은 이제 일류로 진화했다. 삼성, 현대 자동차, LG, SK, 포스코 등. 세계는 이제 한국을 선진국으로 간주한다. 뿐만 아니라 K팝, K칼쳐, K푸드 등 각 분야가 비약적으로 발전, 세계에 한국의 이름을 떨치고 있다.
그럼 정치는 어떤가. 불행히도 답보상태다. 그 동안 우리 정치권이 걸어온 길이 이를 말해준다. 우리는 그 동안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등 6명의 대통령을 거쳤다. 대부분 임기 말 각종 의혹이나 인기 하락으로 집권당을 탈당해야 했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중 4명이 아버지 임기 중 부패혐의로 구속됐다. 노 대통령은 검찰 조사를 받은 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은 구속됐다. 박대통령은 탄핵까지 당했다. 이 정도면 정치가 4류, 아니 더 퇴보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현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여당인 국민의힘 상황을 보자. 당내에 1백22명이나 되는 국회의원이 있다. 3선 이상만 해도 31명이나 된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정권의 민주당 후보를 이길 수 있는 후보를 당내에서 배출하지 못했다. 문대통령이 검찰총장에 임명한 윤석열을 후보로 옹립, 간신히 승리했다. 그가 국민의힘 출신 대통령을 구속 수사한 검사였는데도. 그 정도로 당내에는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 없었다. ‘0선 30대’의 이 준석이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을 제치고 당 대표가 됐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지 1년 7개월이 됐다. 지지율은 취임 첫 달에 50%대를 찍은 후 내리막길을 걸어 30%대 박스권에 갇혀 있다. 평생 검사였던 그는 준비 안 된 대통령이다. 각종 실언과 거칠게 밀어 부치는 독선적 행보, 어설픈 정책, 이준석 전 대표와의 갈등에 부인 리스크까지 겹쳐 인기가 바닥이다. 그 동안 집권당 대표가 두 명이나 쫓겨나거나 물러났다. 비상대책위원회를 3번이나 꾸려야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됐다. 그게 국민의힘 현주소다.
야당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이재명 대표는 윤대통령에게 0.73%라는 근소한 차로 패배한 민주당 대선후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 대표가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이 57%나 되는 여론조사도 나오고 있다. 그는 1주에 2~3번 법원에 재판 받으러 가는 사법 리스크 극복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윤 정권이 죽을 쑤고 있지만 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과 엎치락뒤치락 하는 이유다.
586 운동권은 지난 20여 년간 민주당의 주류로 활동했다. 그러나 도덕적 우월감과 오만에 젖어, 국민평균 수준의 윤리 도덕성도 갖추지 못한 인물들로 전락했다. 현재의 극단적 진영대립에도 큰 책임이 있는 그들이지만 여전히 차기 총선에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취임하면서 차기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결의다. 그의 말 대로 여의도 문법이 아니다. 그는 스마트하고, 젊은 엘리트다. 말도 잘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내용 있는 정책, 윤대통령과의 관계, 김건희 특검법 처리 등 그 앞에 놓인 숱한 난제에서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그의 지금 인기는 언제 물거품처럼 사라질지 모른다.
정치인은 개인적 영달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치에 입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력이라는 힘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제하에서 그 힘의 정점은 대통령이다. 오랫동안 정치를 하면서 대권후보가 되지 못하는, 그 꿈도 꾸지 못하는 정치인들이라면, 당내에서 대권후보를 내지 못하는 정당이라면 희망이 없다. 유권자들은 그런 이들을 준엄하게 심판해야 한다. 그저 국회의원 특권에 안주, 세금이나 축내는 기득권 세력으로 국민의 짐만 되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발전하지 못한다. 4류 정치가 계속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