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여! 오, 삶이여!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질문들/믿음 없는 자들의 끝없는 행렬에 대해/어리석은 자들로 가득 찬 도시들에 대해/나 자신을 영원히 자책하는 나에 대해… 삶이 존재하고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장엄한 연극은 계속되고/너도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는 것.
이 시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낭송되어 애플 제품 광고에도 인용된 휘트먼의 시다. 영화 속 존 키팅 선생 역의 로빈 윌리엄스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시가 예쁘기 때문에 읽고 쓰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쓰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이런 것들은 인류의 생존을 위한 숭고한 추구이다. 그러나 시와 아름다움, 낭만,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들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우리가 시를 쓰고 읽는 것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야… 휘트먼은 이렇게 썼지. ‘오 나여! 오 삶이여! 질문은 끝없이 반복되고, 부정한 것들이 꼬리를 물고, 도시는 바보들로 넘치고. 좋은 게 뭐가 있나. 오 나여! 오 삶이여’ 이제 대답해봐. 너는 여기 있고, 삶이 있고…강렬한 연극이 진행되고, 너는 시를 바칠 수 있어.”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 예찬론자였다. 잡스는 종종 “애플의 DNA는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교양과 인문학의 결합된 기술이야말로 가슴 벅찬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시인의 시 구절을 자신들의 기술적 우위를 자랑하는 데 활용하는 사람들, 그들의 인문학적 소양과 자긍심이 부럽다.
그렇다, 우리는 자주 “오, 나여! 오, 삶이여!”라고 자신을, 자신의 삶을 호출해야 한다. 자신이 지금 어떤 시의 구절을 써 나가고 있는가 자문해야 한다. 때로는 삶이 하찮고 남은 시간들도 공허하게 느껴진다.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질책 속에 마땅한 결론조차 없다. 주위 사람들은 반복되는 투쟁 속에 볼품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이곳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연극은 계속 펼쳐지리라는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한 편의 시를 써 나가고 있으며, 그 시를 세상과 공유한다.
휘트먼은 큰 시인이다. 그는 아름다운 시 몇 편을 남긴 시인이라기보다는 국가정신을 만든 거대한 산 같은 사람이다. 휘트먼은 독학으로 세상의 이치를 터득했고, 미국의 근대화를 목격한다. 그는 이른바 초월주의 문학의 기수였다. 초월주의는 인간을 `죄인`으로 보는 칼빈주의에 반발해 나타난 것으로, 인간을 양도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존엄한 존재로 본다. 근대 미국을 만든 바로 그 정신이다. 휘트먼은 평생 단 한 권의 시집 `풀잎`을 남겼다. 시집 서문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다.“지구와 태양과 동물을 사랑하고…사람들에 대해 인내심과 즐거움을 갖고, 당신 자신의 영혼을 욕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 배척하라. 그러면 바로 당신의 몸이 위대한 한 편의 시가 되리라.”
인생은 하나의 밑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책 한 권에 그은 ‘하나의 밑줄’이 때로는 새로운 시작이 되기도 하고,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터닝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나의 책은 어떤 책으로 쓰여질까. 아니 어떻게 읽혀지고 있을까. 인생을 한번만 읽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곱씹어가며 좋은 시집 읽듯이 정성스럽게 오늘 하루를 읽어야겠지. 어렸을 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마구 넘겨버렸던 페이지를 다시 뒤로 넘겨 다시 쓸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책이라면 그 인생의 끝마무리를 읽으며 좋은 책이 되었노라고 읽는 이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마음으로 책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시를 읽고 쓰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삶이 곧 한 편의 시이기 때문이다. 삶이라는 장엄한 연극에 참여하고 있는 이 순간, 우리는 시의 한 구절을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 시와 나쁜 시는 없다. 자신의 시인가, 남의 시인가가 있을 뿐이다. ‘나 없는 내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박제화 되어 가는 우리의 감수성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로빈 윌리엄스. 영화 속에서 “현재를 즐겨라”라고 외치던 그가 오랜 우울증과 싸우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부재로 세상은 조금 어두워졌고 따뜻한 웃음이 조금 줄어들었다. 그것을 다시 채우는 것은 우리의 할 일이다. 영화 속 로빈 윌리엄스는 휘트먼의 시를 낭송하고 나서 마지막에 이렇게 묻는다. “너는 어떤 시가 될거니?”
팔순의 이 나이에라도 천천히 한 구절 한 구절 읽어 내려가는 유유자적의 철학으로 읽어 내려가야겠다. 읽으며 밑줄 긋는 곱씹음으로 다시 넘겨 그 구절을 찾아 음미하며 다시 읽을 수 있는 내용을 담은 한 권의 책이고 싶다. 오늘도 잠시 멈추어 서서 주위를 둘러보며 밑줄 그을 것이 없는지, 만나는 모든 것들을 살펴보며 밑줄 그으며 음미하는 그런 날이었으면 좋겠다. 내 인생은 누가 밑줄 그으며 읽어줄까.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만한 곳. 나잇값을 하며 살자. 오래 전에 읽었던 어느 노인의 글이 문득 떠오른다. “고물과 골동품의 차이를 아는가? 나이든다는 것은 고물이 되는 것이 아니고 골동품이 되는 것이다.” 고물은 버릴 때도 값을 치러야 하지만, 골동품은 세월이 갈수록 진가를 발휘한다는 기특한 관념으로 다시 일어선다. 뒤를 돌아보니 꽤나 많은 길을 걸어왔다. 아름다운 골동품이 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보니, 갑자기 엄숙해지면서 또 다른 힘이 솟는다. 저녁노을은 질 때가 더 아름답듯이 생의 황혼 길을 황금길로 장식해야 할 텐데…
불현듯 백범 김구 선생의 글이 생각난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발걸음 하나라도 어지럽히지 말라. 오늘 내가 가는 이 길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기에…” 이제부터라도 가야만 하는데도 불구하고 가지 않은 것 때문에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