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형같은 분들이 있다. 그분들은 대체로 소신이 분명하다. 그들은 소신대로 살아가기에 삶을 글로 표현해도 잘 읽히거니와 글 쓰는 솜씨도 좋으시다. 남편은 그분들 글이 지면에 실리면 꼭 찾아서 읽곤 한다. 그들 가운데 S 목사님의 책 소개 글을 얼마전에 읽게 되었나 보다. 글에서 소개하는 책은 최종수 목사님이 쓰신 묵상집 〈버섯처럼〉이었다.
최종수 목사님은 남편과 오래전에 만난 적이 있는 분이다. 장기수를 후원하는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모임'(이하 고난 함께)에서였다. 남편이 고난 함께에서 실무자로 일할 때였다. 최 목사님은 미국에서 고난 함께 모임을 만들어 소식지도 만들고 후원금도 보내주셨다. 최목사님이 한국에도 방문하셔서 잠깐 얼굴을 뵈었으나 친분을 쌓지는 못했다. 두루두루 오래된 인연들이 눈에 띄자 남편은 마음이 끌렸나 보다.
연세가 팔십 중반이신 최 목사님은 몇십 년 전부터 버섯에 깊은 애정을 가져오셨다. 버섯을 두루 연구하시고, 현장에서 버섯을 찾아다니시고, 그래서 그에게 쌓인 지식과 경험을 버섯 애호가들과 널리 나누고 계신다. 최 목사님은 연세가 많아지시면서 그의 버섯 사랑을 이어갈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후배들에게 비추신 적이 있단다. 남편은 버섯이 사람에게 이로울 뿐만 아니라 생태계에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귀한 존재임을 새삼 깨닫고는 최목사님을 직접 만나 뵙길 원했다.
나도 버섯을 먹을 줄만 알았지 버섯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몽고메리 글쓰기 모임의 지인들은 내가 버섯에 대해 새로운 관심이 생긴 걸 듣자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환상의 버섯(Fantastic Fungi)’을 소개했다. 균류인 버섯은 아주 오래전부터 지구에 존재하면서 식물에 탄소를 공급하고 죽은 나무나 동물을 분해 흙으로 돌려보내는 등 생태계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한다. 버섯은 오랜 시간 균사 형태로 있다가 식물로 따지면 꽃에 해당하는 자실체를 만든다. 이 자실체가 우리 눈에 보이는 버섯이다.
나는 무엇보다 균사가 땅속에 널리 퍼져 있고 균사끼리 전기적 충격으로 소통한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영상이 보여주는 지하의 균사 세계는 마치 영화 ‘아바타’에서 본 장면같았다. 외계 위성 판도라에 사는 나비족이 촉수처럼 생긴 것으로 동물이나 식물과 서로 연결한다. 특히 영혼의 나무가 빛을 내면서 나비족의 조상 에이와와 연결하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어떤 버섯 연구가들은 지하에 자리잡은 균사의 지도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탄소 순환이나 비옥한 토양을 위해 버섯을 보전하려는 노력이란다.
최 목사님은 메릴랜드주와 펜실베이니아주가 맞닿은 애팔래치안 산맥에 가까운 마을에 사신다. 우리 식구는 최목사님 댁에서 이틀 밤을 보냈다. 최 목사님은 연세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정정하셨다. 첫날 저녁부터 최 목사님은 아주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첫날 밤 목사님과의 대화 상대는 남편이었다. 둘째 날 저녁이 되어서야 나는 목사님 이야기를 바쁘게 들을 수 있었다. 목사님의 목회 여정, 독특한 이야기를 가진 버섯들, 그리고 가족 이야기. 목사님께서 관심 갖는 것들은 얼마나 깊게 연구를 하시는지 학자적인 열정이 흘러넘쳤다.
목사님은 12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는 버섯 채취를 안 한다고 하셨다. 우리는 버섯을 자연 속에서 직접 보는 기회 대신 게티즈버그 국립묘지를 방문했다. 그곳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많았는데 목사님은 버섯을 알려면 나무를 공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목사님과 가까이 살면 버섯이나 나무에 대해 많이 배울 것 같았다. 목사님의 버섯 후계자가 되려면 사는 곳이나 재정자립, 연구시간 등 큰 결단이 필요해 보였다.
최 목사님 부부와 버섯이라는 매개체로 만나서 버섯 지도처럼 우리 인생의 지도가 확장된 기분이다. 고난 함께, 목회, 그리고 버섯까지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그곳이든 이곳이든 반가이 맞아줄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곳곳에 소중한 사람이 기록된 인생의 지도를 마음에 품으니 든든하다.
목사님댁을 떠날 때부터 비가 내렸다. 고속도로 위의 자동차와 함께 달리는 애팔래치안 산맥도 보슬비에 젖고 있었다. 빽빽한 구름이 낮게 내려와 산에 말을 거는 것처럼 보였다. 숲속 나무 사이사이에 자욱한 안개는 마치 숲의 정화 의식을 은밀하게 치르는 것 같았다. 산 여기저기서 피어오르는 안개 기둥은 구름에 가닿으려 애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