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잠들었던 어릴 때를 기억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어머니의 따뜻한 등에 업힌 상상만으로도 봄 햇살 같은 나른함에 눈이 절로 감길 것 같다. 첫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감사함이 예상 못한 큰 산이 되어 새롭게 다가왔다.
엄마의 등에 업힌 아기는 졸린 눈을 비비며 칭얼거리다 한참 만에 잠이 든다. 쌔근거리는 아기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행여 깰까 발걸음도 조심스럽다. 허리에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이 힘에 부칠 텐데 자장가를 흥얼거리며 아이가 깊은 잠이 들기를 기다리는 엄마의 가슴속은 아이의 체온으로 데워져 행복해진다.
온돌방의 아랫목처럼 훈훈한 엄마 등의 온기가 아기를 깊은 잠 속으로 초대하고 있다. 엄마는 포대기 아래로 내려온 아기의 발가락을 사랑스럽게 감싸며 아기의 꿈속을 함께 거닐고 있다. 땀으로 촉촉이 젖어오는 등줄기에 아기는 코를 깊이 묻고 잠에 빠졌다. 행여 땀띠라도 생길까 걱정되는 마음에 자리에 눕히면 아기는 이내 칭얼거린다.
첫 아이 키우며 소꿉장난 할 때 엄마 역할놀이 하는 것 같은 이런 내 모습이 어설프기만 했었다. 때로는 어쩔 줄 몰라 같이 울기도, 어르고 달래기도 했었다. 유독 몸집이 또래에 비해서 컸던 아이를 혼자 안아서 업고 눕히는 일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었다. 몸도 못 가누는 아기를 돌려가며 업었다 내렸다 하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아슬아슬한 서커스 보는 듯 조심스럽고 진땀 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되면서 그 역할을 배우지 않아도 잘 해냈다는 것이 경이롭다.
태어날 때부터 몸무게가 상위에 들었던 내 아이를 보면서 사람들은 우량아 선발대회 나가 보라는 농담을 했다. 자라면서도 여전히 몸집이 컸던 아이는 동생이 생기고도 가끔 내 등을 찾으며 업히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아이를 업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등에 붙어있는 온기가 탯줄로 이어진 생명처럼 행복함을 주었다. 아이도 따뜻한 안정감에 행복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내 어릴 때 별명이 이금녀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희극 배우이자 코미디언 백금녀 씨가 많은 인기를 얻고 있었는데 몸집이 큰 뚱보였다고 한다. 그 이름을 붙여서 내 별명을 이금녀라고 불렀다 하니, 나 또한 우리 아들만큼이나 아기 때는 우량아였던 것 같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등에 업고 아버지의 저녁을 준비하셨을 거다. 나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 안락함을 느끼며 달콤한 잠을 잤을 것이다. 추운 날에는 나를 감싼 포대기 위를 덮어서 바람을 막아 주셨을 것이다. 자그마한 키에 덩치 큰 나를 업는 일이 어머니도 힘드셨을 거다.
내가 엄마 되어 아이를 키우면서 그렇게 나를 키우셨을 어머니 생각이 더 깊어졌다. 그 등에 업혀서 잠들었을 때 나를 감쌌던 어머니의 체온과 향기를 기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느낄 수만 있다면 뜻하지 않은 사고로 내 나이 스무 살에 멈춰버린 어머니에 대한 진한 사랑과 그리움에 충분한 위로가 되었을 것 같다.
나는 엄마가 되기 전에는 내가 더 이상 받지 못하는 어머니의 사랑에 더 목이 말랐었다. 삶이 힘들 때 느껴지는 어머니의 빈자리는 원망스럽기도 했었다. 누리지 못하는 것들에 더 많이 속이 상했었다. 하지만 나도 엄마가 되면서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 달라졌다. 내게 주신 사랑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졌다. 잘해드리고 싶은 내 마음을 전할 길 없다는 게 마음 아팠다. 내가 느끼는 감사와 그 사랑을 하나씩 돌려 드릴 기회를 잃었다는 게 안타까워졌다.
지금 나는 어머니의 온기를 기억해 낼 수는 없지만 내 아이가 등에 업혔을 때 그 체온은 느낄 수 있다. 그 기억으로 어머니의 따뜻함을 품에 꼭 안고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말하며 저 하늘에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