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나는 ‘폭풍 성장’ 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만날 적마다 빠르게 성장하는 어린 손주들의 변화에 놀라면서 아이들이 조금 천천히 자라 주길 바랬다. 그런데 올 겨울에 아이들처럼 무섭게 빨리 자라는 식물을 보면서 세월의 속도를 느낀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집에 온 큰딸이 작은 포장지를 줬다. 양파 사이즈의 양초로 둘러싸인 구근, Waxed Amaryllis였다. 위로 1인치 크기의 푸른 줄기가 둘 뾰족이 나 있는 것을 손안에 들고 어디에 둘까 궁리하다 부엌 카운트 한쪽에 뒀다. 이 구근 식물은 물을 주거나 특별히 돌볼 필요가 없다는 설명서를 읽고 집안의 화초들 물 주는 것을 곧잘 잊어버리는 내 마음이 홀가분했다. 며칠 후인가 푸른 줄기가 조금 더 올라온 것이 눈에 띄었다. 그날부터 아침 저녁으로 아마릴리스 구근에 눈길을 줬다. 성장 속도가 확연히 눈에 보였고 혼자서 폭풍 성장을 하는 것이 신기해서 사진 찍어서 가족들에게 보냈다.
하루는 슬그머니 조금씩 위로 치오르는 줄기를 보면서 ‘잭과 콩나무’ 동화를 떠올렸다. 우습지만 줄기가 부엌 천정을 뚫기 전에 밖으로 내 보내겠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한 뼘 반 길이쯤 자란 한 줄기가 살짝 몸을 비틀어 틈새를 보였다. 이번에는 ‘데미안’에 나오는 ‘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 를 중얼거리면서 틈사이로 흘러나온 불그스레한 빛에 끌렸다. 선명한 붉은 빛은 조금씩 봉우리를 밀쳐내고 모습을 보이더니 바로 핏빛 정열의 꽃을 피워서 부엌창으로 들어온 아침 해가 보낸 빛들과 어울려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커피 내리는 것도 잊고 꽃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내 속에 들어온 꽃이 나에게 싱싱한 기운을 줘서 내 일상에 활기가 돋았다.
나는 꽃과 친해졌다. 아마릴리스는 4월의 비를 생략하고 5월에 핀 꽃처럼 다가올 여름을 일깨워서 겨울 추위를 싫어하는 내 몸과 마음이 푸근했다. 그러나 성급한 젊음을 가진 꽃이 재빠르게 나를 팍 늙은 노인으로 만들 것 같은 두려움을 떨치지 못해서 손주들에게 말 했듯이 천천히 자라라고 부탁했다. 내 말은 들은 척하지 않고 한껏 아름다움을 뽐내는 당당한 꽃을 보면서 급하게 먹는 밥은 체하고, 뭐든 성급하면 실수한다는 말을 생각나는 대로 해주며 겨울을 꽉 잡았다.
한 줄기에서 4송이의 꽃이 환하게 활짝 핀 새벽에 달력을 보니 우리집에 온 지 꼭 한달 되는 날이었다. 겨울의 중심에, 그것도 흙과 물, 햇볕에 무관하게 부엌 한쪽에서 혼자서 성장하고 피를 토하듯 선명한 붉은 꽃을 피운 구근이 마치 나에게는 세월을 잊게 하는 신기한 마술 꽃 같았다. 며칠 전부터 꽃이 조금씩 시들어 가서 아쉬웠는데 옆에서 함께 자란 줄기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꽃들을 내보낸다. 작은 구근 위로 머리가 무겁도록 피어난 꽃들은 마치 모닥불의 불길처럼 흔들거리며 춤추듯 흥겹다.
사실 기다림의 미학을 모르는 구근을 탓하지 않는다. 매사에 성급하고, 뭐든 즉석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조급함에 부응한 결과다. 뭐든 빠르게, 빨리 빨리 일사천리로 밀어 부치는 사람들의 성향이 세상의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나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말은 시대착오다. 삶의 기로에서 주춤 이거나 조심할 이유가 없음을 이제는 안다.
얼마나 내 생활이 건조하면, 이까짓 꽃 하나에 의미를 주나 하면서 웃지만 돌아서서 다시 꽃을 본다. 더불어 매일 꽃의 변화와 함께 내 마음도 변한다. 솔직히 나도 열정적인 기세로 활짝 피어나고 싶다. 세상은 넓고, 하고 싶은 일은 많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고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많다. 어딘가로 확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면 나이와 건강의 장애물을 훌쩍 뛰어넘자 싶다가 연말에 걸린 감기로 아직 휘청거리는 남편을 보면서 현실로 돌아온다.
오늘은 밀랍을 입힌 아마릴리스가 폭풍 성장해서 피운 꽃을 보면서 나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내 마음은 과거로 떠나서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의 멜로디를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