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현대 발굴을 목표로…7년간 23개 스타트업 도와 일자리 8만개·투자 6억불 창출”
“애틀랜타는 BIPOC(흑인·원주민·유색인종) 인구가 전국 평균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시장 진입 단계인 시리즈A 벤처 투자의 94%가 백인 소유 기업에 흘러든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진단이다. BCG는 애틀랜타가 현재 혁신과 정체의 기로에 놓여있으며, ‘기회의 불공정’이 도시의 잠재력을 방해하는 4가지 걸림돌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아일린 리(한국명 이선미)는 이같은 백인 일색의 ‘하얀’ 스타트업 시장을 다채로운 색깔로 바꾸고 있다. 그는 2011년 자신이 창업한 벤처포아메리카를 거쳐 현재 스타트업을 돕는 비영리단체인 엔데버(Endeavor) 애틀랜타의 매니징 디렉터이자 여성전용 공유사무실 ‘롤라’의 운영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제2의 현대를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자리 창출과 경제발전을 대기업 유치에만 의존하는 애틀랜타의 고정된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제조업 기반의 대량생산-대량소비의 낡은 공식대신 스타트업을 필두로 한 혁신의 대안적 경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엔데버는 창업자의 “삶”을 지원한다는 모토를 가지고 있다. “시작과 끝이 있는 프로그램보다는 파트너에 가깝다. 선별 과정을 길고 까다롭게 거치는 대신, 다른 정부나 기관의 지원 사이사이 빈틈을 메우는 데 집중하는 것”이 엔데버의 모토이다.
초기 자금 운영이 불안정한 스타트업은 외부 투자 의존도가 높다 보니 자금지원 여부가 운영의 결절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고민은 ‘사업 전망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이다. “지출 증빙을 요구하거나 세금 보고를 위해 행정편의적으로 지원 시기와 규모를 결정하는 지원단체가 많다. 우리는 언제든 전화를 걸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되고자 한다.”
지난달 애틀랜타저널(AJC)에 아일린 리 씨의 엔데버 애틀랜타 합류 소식이 보도됐다. AJC 홈페이지 캡처
2017년에 출범한 엔데버 애틀랜타는 지난 7년간 23여개의 스타트업 기업을 도와 8만여개 이상의 일자리을 창출해 냈으며, 6억 2000만 달러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지난해 구인·구직 플랫폼 링크드인은 창업 시, 예상 성장률이 가장 높은(92%) 도시로 애틀랜타를 꼽았다. 그러나 여기에는 통계의 허점이 있다. 사업 규모에 따라, 인종, 성별, 계급에 따라 ‘성공’은 천차만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리 디렉터는 유색인종과 여성이 겪는 취약성에 주목한다. “서부나 동부에 비해 발전이 더딘 남부 지역인 조지아에서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이다. 실패와 시행착오의 경험을 밑거름으로 삼는 것이 스타트업이지만 누구에게는 더 가혹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애틀랜타와 같이 단기간 빠른 성장을 겪은 도시의 경우, 거품이 빠지면서 혹독한 옥석 가리기가 시작되면 타격은 BIPOC에 더 집중된다.
리 디렉터는 애틀랜타가 흑인 민권운동의 산실이지만 역설적으로 흑백 이분법의 함정에 빠져있다는 생각도 한다. 뉴욕에서 평생 동양인 꼬리표를 달고 살다 2017년 이주한 애틀랜타에서 처음 “백인”으로 불렸다. 여성에 대한 인식이 그렇듯, 백인에 대한 인식 역시 실체보다는 주관적인 사회적인 틀에 불과함을 깨달았다. 그는 “흑과 백으로만 나눠진 세상에서 더 소수계의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실제 입사하고 나서 회사에 아시안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1970년대 뉴욕으로 이민 온 부모에게서 태어난 한인 2세다. 그는 젊은 시절에 대해 “내 목소리와 정체성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을 썼다”고 회고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사춘기가 늦게 찾아왔다. 24살에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자 더이상 아빠가 원하는 것을 좇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아버지의 길이었던 의사가 되지 않기로 결정을 내린 후에도 후회와 의심이 수시로 괴롭혔다. “전문직이 되지 않으면 살기 위험하다”고 걱정하는 어머니의 만류도 있었다.
그는 이제 여성 등 소수자가 안전하게 일하고 편하게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 냈다. 롤라 사무실 곳곳에는 여성 리더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아이를 동반한 워킹맘들을 위한 수유실과 기저귀 교환대도 마련돼 있다. 이제는 “2살, 6살이 된 두 딸에게 롤모델이 된 것”에 보람을 느낀다.
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