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2월이다. 새로 시작되는 해는 푸른 용의 해라고 떠들던 때가 어제 같은데 어느덧 1월이 지나고 새로운 2월이 시작되었다.
요즘 들어 몽고메리에는 비가 자주 내리고 있다. 뜨거운 여름 한낮을 미리 식히려는 듯 습기를 머금은 구름이 하늘 곳곳에 잔뜩 도사리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지난 밤부터 내린 비가 빗소리로 아침 인사를 한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그 소리는 정말 빈대떡 부치는 소리와 꼭 닮아 있었다.
커피 포트에 물을 부었다. 쪼르르 물 따르는 소리가 행여 빗소리와 어울리려나 했지만 그대로 빗소리에 묻혀 희미해 졌다. 역시 비오는 날에는 빈대떡이 최고야 하며 돌아섰다. 순간 벽에 걸린 달력이 눈에 들어 왔다. 벌써 2월이다. 그리고 그 2월엔 음력 설인 구정이 있었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하고 부르던 옛 동요가 생각났다. 아직도 한국에선 구정 설 분위기를 내고 있을까 궁금해 졌다. 신정보다 구정이 더 설날 같았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 1월 1일은 명목상 새해의 시작이었고 정말 새해를 맞이 하는건 구정이었던 것이다.
설날이 되면 온 집안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사과상자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서던 친척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남자들이 근황을 서로 나누는 동안 여자들은 한복의 허리춤을 고운 끈으로 질끈 동여매고 둥근 소매 부리를 둘둘 말고선 기름 소리를 내며 빈대떡을 지지곤 했다.
푸짐하게 쌓아 올린 빈대떡, 참기름 냄새 고소한 나물들, 깊게 우려낸 탕국, 편편히 썰린 하얀 떡위에 색동 고명 올린 구수한 떡국, 그리고 마른 북어까지 한상 푸짐하게 차려 조상님께 바치고는 모두 둘러 앉아 맛난 음식으로 한해의 첫끼를 함께 나눴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세배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어른들께 공경의 표시로 절을 하며 만수무강을 빌어드리고 어른들은 한해를 잘 마무리 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덕담을 해주고 세배 돈을 건냈다. 그 신났던 기억과 빳빳했던 세배 돈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머나먼 옛날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한국 뉴스에서마저 색동저고리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박물관 어느 곳에 있을 법한 색동저고리처럼 우리의 구정도 어느샌가 전통이라고 이름 지어져 유리 진열장 위 한곳에 놓여지고 있는 것 같았다. 투명한 진열장 안에서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라는 노래소리가 들려 오는 듯 했다. 문득 많은 새 중에 왜 까치의 설날일까 그리고 왜 어저께가 까치 설날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학자는 말하길 옛날에 부르던 말은 까치설이 아닌 아치설이었다고 한다. “아치”, 작다는 의미를 가진 아치설이 시간이 흐르면서 음이 비슷한 까치로 변형 돼 까치설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치설은 작은 설날인 것이다. 새해 첫날인 설날은 큰 설날로 음력 1월 1일인 정월 초하루이고, 그 전날인 음력 12월의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날이 작은 설인 아치설인 것이다.
그래서 까치설은 어저께가 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미소가 지어졌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생각났던 것이다. 중요한 시간을 소중히 하고 픈 사람들의 바램은 동서양 모두가 같은 거구나 하는 생각이 나서였다.
그날이 그날인듯 무감각했던 나의 지난 1월이 떠올랐다. 무의미하게 지낸 시간을 반성하라고 말하는 듯 음력의 새해가 나에게 다가왔다. 중요한 날이니 까치설로 미리 준비를 하라고 말이다.
커피 포트안의 물들이 현란한 춤사위를 만들며 끓어 오르고 있었다. 보글 보글 끓는 소리와 빗소리의 장단이 제법 조화롭다. 빈대떡의 지글거리는 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의 새해를 맞이 하고 있지만 왠지 같은 설날을 맞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가오는 시간들을 미리 준비하고 소중히 맞이하려는 마음을 갖는다면 빈대떡이나 색동저고리의 아침이 아닌 다른 아침을 맞이 해도 우리는 제 몫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커피 잔에 희망 가득한 물을 부으니 천사 날개 같은 하얀 김이 촉촉한 아침에 진한 향기로 새해 인사를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