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찌르자 오랑캐 몇 백만이냐/대한 남아 가는데…”(승리의 노래:1950). 60대 이상 여성이면 다 아는 노래다. 초등학생 시절 여학생들의 고무줄 놀이 지정곡이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낙동강아 잘 있거라…”(전우야 잘 자라:1951)를 모르는 60대 이상 남성도 없을 것이다. 그 세대의 뇌리에는 부지불식간에 반공의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이런 노래를 통한 반복 학습효과다.
노래는 연극, 영화, 소설 등과 함께 문화전쟁의 첨병이다. 대중 선동과 의식화교육에 문화는 중요한 도구다. 좌파나 독재자들은 일찍이 이를 간파, 선전선동의 도구로 활용했다. 선동은 강력한 정치교육의 수단이자 대중투쟁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북한 노동당도 이를 잘 알아 선전선동부를 두고 김씨왕조를 지탱하는 받침돌로 활용하고 있다. 나치 선전상 괴벨스는 “거짓말도 계속 반복하면 진실로 믿는다”고 했다. 우리 사회의 60대 이상이 ‘공산당은 얼굴이 붉고, 뿔이 난 괴물’로 생각하며 자랐던 것처럼.
해방 후 좌우 대립과 6.25를 거치며 우리 사회는 철저한 반공, 우파 국가가 됐다. 그러나 민주화 시대가 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보수 대 진보이념을 중심으로 벌어진 문화 전쟁에서 보수가 패배한 때문이다. 지금 우리 문화계는 진보 좌파가 주류다.
문화계를 장악한 진보 좌파는 우리의 의식세계를 지배하는 각종 영역에서 담론을 주도해 나갔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 대한 평가, 강압 대 포용의 대북 정책, 빈부 차, 젠더 갈등 등에서 좌파는 승기를 잡았다.
특히 이승만 정권에 대한 의식화 교육은 압권이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악마화됐다. 6.25 때 ‘혼자 살겠다고 서울을 버리고 도망간 대통령’이라는 조롱을 비롯해 미 식민지 괴뢰정권, 친일파, 부정선거, 독재, 4.19 등이 그에게 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다. 독립운동,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국가 건설, 토지개혁, 교육투자, 한미동맹에 의한 평화 구축 등 그에 대한 긍정 평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토대를 구축한 건국 대통령이지만 기념관도, 동상도 없다.
영화는 노래와 함께 대중을 의식화 하는데 중요한 도구다. 정치인들은 이를 잘 이용한다. 영화 ‘판도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 추진이 대중의 지지를 얻는데 큰 기여를 했다. 민주당은 신군부와 검찰 독재를 교묘하게 연결 짓는 방식으로 최근 흥행에 대성공을 거둔 ‘서울의 봄’을 활용하고 있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기생충’도 재미와 함께 빈부격차와 부자에 대한 반감도 보여준다.
그러나 우파는 보수의 이념을 전파하면서도 ‘기생충’처럼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지 못한다. 최근 개봉된 이승만 대통령을 다룬 ‘건국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볼만한 영화지만 딱딱하다. 재미있는 볼거리가 아니라 ‘이승만 바로 알기’를 위한 다큐멘터리 형식이다. 이승만을 모르는, 왜곡된 역사 교육을 받은 젊은층이 봐야 하는 영화다. 그렇지만 60대 이상 노년층이 관객이다. 개봉관도 몇 개 안된다. 그것도 하루에 1회, 또는 나쁜 시간대가 많다.
보수층은 카톡방을 통해 좌파에 대한 욕만 할뿐 이런 영화를 보거나 적극적으로 전파하지 않는다. 우파의 좋은 영화가 나오지 않는 이유다. 문화전쟁의 패배는 이념 간 대결의 패배로 이어진다. 행동하는 보수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5천년 역사에 지금처럼 한국이 잘 살아본 적이 없다. 경제적으로 선진국이 된 것은 물론 K팝, 영화 드라마 등 문화적 측면에서도 알아주는 나라가 됐다. 그런데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라고 대한민국을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진보·좌파 진영의 일부 인사들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을 친일·분단 세력이 세운 반쪽짜리 국가라며 정통성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또 계급 투쟁적 시각에서 한국사회를 헬조선, 불공평한 사회로 규정한다. 이를 인정하는 사람도 많다. 문화전쟁이 왜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