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제 너와 같았으니, 너 내일 나와 같으리’
묘지 지날 때면 삶과 죽음 다시 돌아보게 돼
#6일째
오늘도 길을 나섰다. 스페인의 새벽을 이렇게 걸을 수 있다니, 마냥 좋았고 마냥 행복했다. 1시간이 지났을까? 동쪽 하늘이 붉어진다. 해가 오르기 시작한다. 두둥실 소리가 난다. 태초에도 저랬을까? 창세기 때 떠올랐던 해가 지금, 이렇게 떠오른다.
카미노를 시작할 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무엇을 얻고자 함도 아니었고 무엇을 이루고자 함도 아니었다. 그저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그저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것만으로 족하고,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동녘 일출을 맞으며 시작하는 순례길. 창세기에 떠올랐던 해가 지금 또 떠오른다.
계속 간다. 순례자들도 간다. “안녕하세요?” 한 순례자가 옆을 스치면서 한국말로 인사한다.
“한국 분이세요?” 물었더니 아니란다. 중국 북경에서 왔다. 한국 그룹이 있어 안녕하세요? 한 마디만 배웠단다. 영어가 익숙하다. 북경 소재 대학 사학과 교수다. 왜 카미노를 하고 있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평화를 주는 길이 없단다.
평화! 맞는 말이다. 이 길에는 경쟁이 없다. 더 가지려고 하는 욕심도 없다. 오히려 있는 것을 버려야 하는 곳이다. 우리 안에는 경쟁이 있고 욕심이 있다. 그 경쟁과 욕심만 내려놓아도 얼마든지 평화로울 수 있는데 그 간단한 이치를 우리는 잊어버리고 산다.
이런 이정표가 중간중간 있다.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몇 차례의 묘지를 지난다. 영주의 호화찬란한 묘지도 있고, 일반 평민들의 공동묘지도 있다. 묘지 앞을 지날 때마다 숙연해진다. 누가 말했던가? 묘지 앞에서 배우는 것이 가장 큰 배움이라고. 그 후부터는 묘지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로마에 갔을 때도 카타콤을 잊지 않고 방문했고, 러시아를 여행했을 때도 도스토옙스키의 묘지를 제일 먼저 찾았다.
지금도 묘지가 나오면 한 번이라도 눈길을 더 준다. 이런 비석이 있다. “나 어제 너와 같았으니 너 내일 나와 같으리라.” 누구의 이야기인가? 우리의 이야기 아니겠는가? 오늘 살아 있다 하더라도 내일도 살아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우리, 우리의 이야기다. 지금도 시계의 초침이 1초 1초 지나가고 있는데, 그렇게 지나갈수록 죽음의 시간도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양의 이정표도 있다.
대니 보이를 좋아했는지 이런 비석도 있단다. “나도 가고 너도 가야지.” 그렇다, 나도 가고 너도 가는 것이 인생이다. 이런 인생 속에서 많은 사람이 이 길을 지나간다. 800km의 이 길을. 무엇을 위해 이 길을 걷고 있을까? 계속 길을 걸으면서 혼자서 묻고 혼자서 대답한다. “언제까지 걸어야 하지?” “죽을 때까지!”
순례자 여권. 어느새 도장이 많이 찍혔다.
#7일째
6시 30분에 길을 나섰다. 해가 뜨려면 1시간도 더 있어야 한다. 상쾌하다. 방향을 찾고 있는데 옆에서 “올라!” 하면서 인사를 한다. 같은 순례자다. 이름은 안나. 독일 출신의 영국인. 현재는 이집트에 산다. 카미노 3번째다. 어떻게 카미노를 3번이나 하고 있냐고 물으니 “peace of mind! (마음의 평화!)” 라고 대답한다. 여기만 오면 마음이 편하단다. 이번 카미노를 마치면 어부의 길로 4번째 카미노를 하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순례자를 위한 숙소 ‘알베르게’ 입구.
어부의 길! 나도 동경하는 길이다. 카미노의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지금 하는 프랑스 길도 카미노의 여러 길 중 하나. 길은 여럿이지만 목적지는 같다. 산티아고, 정확히 말하면 산티아고 안에 있는 콤포스텔라 성당! 거기가 목적지다.
콤포스텔라 성당 안에는 사도 야고보의 유골이 있다. 그것 때문에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가는 길이 생겼고, 그것 때문에 이 길이 순례자의 길, 야고보의 길이 된 것이다. 그런데 야고보의 유골을 모셔올 때 어부의 길로 왔단다. 그렇다면 어부의 길이 가장 의미가 있는 길이 아니겠는가? 어부의 길을 들으니 가슴에 불이 댕겨진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걷는다. 여전히 벌판도 걷고 산길도 걷는다. 오르막길이 나온다. 오르막길이 나오면 반드시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있다. 순례자들은 누구나 발에는 탄탄한 등산화를 신고, 어깨에는 묵직한 배낭을 메고 걷는다. 해가 뜨기 전에 출발해서 해가 중천에 올 때까지 걷는다. 날듯이 걷고, 습관처럼 걷고, 운명처럼 걷는다.
스페인은 어디를 가도 그 중심에는 성당이 있다. 스페인 왕 중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겸한 왕이 많았기에 성당을 중심에 두었고, 주민등록증 하나를 떼려 해도 성당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게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당은 이들의 삶의 중심이 되었다.
카미노 순례길엔 어디를 가나 이채로운 모양의 성당을 만날 수 있다.
매 시가 되면 성당에서는 종이 울린다. 그 종소리 들으며 시간을 재고 거리를 잰다. 이제 한 번 더 들리면 오늘을 마치게 된다. 멀리 들리는 종소리! 걸음을 재촉한다. 〈계속〉
글·사진=송희섭 / 애틀랜타 시온연합감리교회 은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