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면 책은 낡고 책장은 색이 바랜다. 하지만 겉모습이 낡고 바래도 책이 지닌 가치는 결코 낡거나 바래지 않는다. 그렇게 오래도록 세대를 거듭하며 읽히고 읽히는 좋은 책을 우리는 ‘고전’이라 부른다. 1964년에 출판된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고전으로, 출판된 지 6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처음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을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무심하게 책장을 넘기며 예쁜 삽화에 마음을 뺏긴 채, 몇 줄 안 되는 글로 채워진 책 중간 즈음까지 읽었을 때 ‘이만하면 줄 만큼 다 준 것이겠지’ 하던 짐작이 자꾸만 미뤄지며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소년의 친구였던 크고 멋진 나무는 소년이 성장하며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되어 자신을 내주었고, 그가 노인이 되어 힘도 잃고, 쉴 곳을 찾아 헤맬 때, 다 베어내 주고 그루터기만 남은 채로 이렇게 말한다. “앉아서 쉬기에는 늙은 그루터기가 그만이야. 이리로 와 앉아서 쉬도록 해”라고. 그렇게 그 나무는 자기가 가진 것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주었다.
그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던 삽화와 한 줄 이야기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다’는 말이 그 날 이후로 내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다. 이 책은 한 소년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 주는 나무의 지극한 사랑 이야기다.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 맹목적이고 무한한 사랑이 담겨 있다.
어떤 소년이 항상 나무에게 왔다. 나무는 소년을 너무 사랑했고, 소년이 올 때마다 행복했다. 소년은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기도 하고, 나무에 있는 사과를 따 먹기도 했다. 그네도 타고 잎사귀로 왕관도 만들며 그렇게 매일 매일 재미있게 놀았다. 그리고 소년도 그런 나무를 사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소년이 자라자 발길이 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나무를 찾아왔다. 나무는 소년이 와서 너무 기뻤다. 하지만 소년은 놀기 위해서 나무를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돈이 필요하다며 나무에게 물었다. 그러자 나무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사과 열매를 따서 팔라고 했다. 소년은 나무에 올라가 사과 열매를 따갔다.
나무는 그래도 행복했다.
그 뒤 소년은 오랫동안 소년의 발길이 뜸했다. 그러다 다시 나무를 찾아왔다. 소년은 이번에 집을 짓고 싶다고 말했다. 나무는 자기의 가지를 베다가 집을 지으라고 했다. 그래서 소년은 나무의 가지를 베어갔다. 나무는 행복했다. 다시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소년이 늙은 모습으로 나무를 찾아왔다. 소년은 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나무는 자신의 줄기를 베어다 배를 만들라고 말했다. 그래서 소년은 나무의 줄기를 베어갔다. 그래도 나무는 행복했다. 그렇게 세월이 또 많이 흘렀다. 소년은 완전히 늙어서 나무를 찾아왔다. 나무는 더 이상 소년에게 줄 것이 없었다. “얘야, 미안하다. 이제는 너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이젠 나도 필요한 게 별로 없어. 그저 편안히 앉아서 쉴 곳이나 있었으면 좋겠어.” “앉아서 쉬기에는 늙은 나무 그루터기가 그만이야. 얘야, 이리 와서 앉으렴. 앉아서 쉬도록 해.” 소년은 그렇게 했다.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다.
내가 어릴 적엔 미처 몰랐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왜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도 행복해했는지를. 늘 나무에게서 원하는 것을 제멋대로 가져가고 자기가 필요할 때만 찾아오는 소년을 왜 그리 사랑했는지를. 소년이 너무 이기적이고 못됐다는 생각에 마음이 참 불편했었는데 세월이 흐르고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어 보니 나도 엄마 아빠에게 모든 것을 달라고만 했던 그 소년과 다를 게 없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나무가 되어보기도 하고, 소년이 되어 보기도 했다. 부모의 입장이다 보니 나무의 입장이 되기가 쉬웠다. 한없이 주기만 하는 나무의 모습이 부모의 모습처럼 보였다. 한없이 주기만 하면서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모습이 부모처럼 보였다. 그러면서 나는 자녀들에게 아낌없이 주면서도 행복한가? 나 자신에게 되물어본다. 소년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한다. 누 군가로부터 받기만을 바라는 나의 모습이었다. 책 속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지만, 정말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짧지만 굉장히 임팩트 있었던 동화다. 좋은 쪽으로가 아니라 후유증이 아릿하게 남아서다. 어릴 때 읽었을 때는 잘 몰랐다. 나무에 직접적으로 이입하지 못했기에 그저 그냥 이야기로만 받아들였다. 생각이 날 때마다 보고, 몇 년 후에 또 보고…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다른 생각을 했다. 나무가 되어보기도 했고, 소년이 되어보기도 했다.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영역, 교육적 가치, 가령 사랑, 나눔, 헌신, 주는 기쁨에 대해 자주 얘기 나눠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두 아이들은 이미 50대의 장년이 되었으니 할아버지의 내리사람은 손주들에게 향하게 되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아이를 쓰다듬어주고 안아주고 아이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준다면 훗날 이 책을 다시 꺼내어 읽는 나의 손주들도 자기 엄마 아빠를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녹록치 않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누군가에게 기대어 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흔들리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수채화와 같은 잔잔한 감동, 우리네 주변에 이런 사랑 이야기가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