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출장 갔다 돌아온 딸이 작년 가을에 발간된 이해인 수녀님의 신작 시집 ‘이해인의 햇빛 일기’를 구해와서 보내줬다. 가만히 생각하니 전에는 내가 발로 뛰어다니며 찾았던 기쁨들을 이제는 편안히 앉아서 내 아이가 구해서 주는 것으로 즐기는 상황이다.
수녀님의 시집 속에 ‘바다 일기’를 읽다가 불쑥 바다가 보고 싶었다. 그러잖아도 항상 봄과 가을에 바다를 보러 가는데 이번에는 서둘러 봄을 맞으러 바닷가로 갔다. 앨라배마 남쪽 바닷가 작은 도시 Orange Beach는 플로리다 해변보다 한적해서 우리 부부가 즐겨 찾는다. 그곳에 있는 퍼디도 비치 리조트는 우리가 즐겨 묵는 호텔이다. 그곳에 일출을 보기 좋은 방으로 부탁해 놓고 겨울의 끝자락을 잡고 있는 몽고메리를 떠나 남으로 내려가니 마음이 푸근했다. 도로변 물오른 나무들에 상큼하게 돋아난 새 순들이 푸른 잎을 키우려고 부지런히 살랑이고 있어서 앞으로 보게 될 싱싱한 푸름에 가슴도 부풀었다.
호텔 방에 짐을 풀고 해변을 찾았다. 하얀 모래사장에 방문객들이 남긴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보탰다. 동서남북으로 흩어진 발자국이 만든 아름다운 추억들이 밀려오는 파도에 철석이며 옥 빛 맑은 물속에 섞여 있었다. 한참을 바다를 보다가 들고나간 시집에서 수녀님의 ‘바다 일기’를 읽어줬다.
‘수평선이 보고 싶어/ 바닷가에 나가/ 그냥/ 바다! 라고/ 가만히 말했을 뿐인데/ 가슴이 뛰다 못해/ 눈물이 나네/ 달려오는 파도에게/ 그냥/ 파도야! 라고 불렀을 뿐인데/ 또 눈물이 나네/ 집에 돌아와서/ 왜 그럴까 생각하다/ 잠이 들었지/ 꿈결에 흘리는/ 나의 혼잣말/ 산다는 게 언제나/ 끝없는 그리움이어서/ 그러나 실은/ 언젠가는 꼭/ 끝나게 될 그리움이어서/ 그래서 눈물이 난 것이라고’
먼 곳의 수평선이 훌쩍 다가와 수녀님의 영롱한 언어들을 파도에 품고 갔다. 나는 그들이 떠나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며 울지 않으려고 눈가를 닦았다. 내 앞을 빠르게 날아가는 갈매기 두 마리가 정겨워 그들을 따르는데 옆에서 남편이 점심을 걸른 것을 상기시켜줬다. 마침 Fat Tuesday이니 잘 먹자고 멋진 해산물 식당에 가서 ‘꼭 끝나게 될 그리움’은 생각하지 말고 당장 이 순간을 살자 하면서 생굴과 살찐 붉은 새우를 잔뜩 먹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어둑한 동쪽 바다와 마주섰다. 손에 든 커피가 식을 때쯤 새 아침을 열어주려고 태양이 수평선 멀리서 고개를 내밀었다. 찬란하고 웅장한 일출은 대자연의 침묵을 깼다. 먼 바다로 낚시 가는 배가 은빛 물결을 타고 나갔고 나는 해변을 걷다가 다시 한번 멍하니 바다 앞에서 내 어깻죽지가 가볍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마침 재의 수요일이라 남편과 호텔 가까이 있는 성당으로 갔다. 주차장을 꽉 채운 차들에 우리는 한적한 바닷가 동네에 웬 부산스러움이 하고 놀라며 도로변으로 나가서 길가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성전으로 가는 길에 보니 거의 모든 차들은 북부 주들의 번호판이었다. 겨울을 나려고 내려온 Snow Birds 노인들이 반달 형의 성당 내부 좌석을 꽉 메운 사이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끼어 앉았다. 좌우를 둘러 본 남편이 “흑인이 한 사람도 안보여” 해서 “걱정 마세요. 유색인인 우리가 있잖아요” 은연중에 우리는 피부색에 민감하다.
그런데 막상 미사가 시작되자 또 한 사람의 유색인이 있었다. 성전에 오른 신부님이 인도 출신이었다. 가톨릭교회에 신부가 부족하니 예전에는 아일랜드 신부님들이 대거 미국으로 이주했지만 근래에는 동양과 아프리카에서 많이 이주해온다. 사실 내가 다니는 성당의 주임신부는 필리핀에서, 보좌신부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온 분들이다. 이민 1세인 이들이 미국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은 그들이 사제들이라 쉬워 보였다.
젊은 사제는 강론 후에 “금요일에는 고기를 먹지 마십시요!” 여러번 강조하셨다. 솔직히 인도인 특유의 악센트 탓인지 내 귀 탓인지 그의 설교를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는데 남편이 도무지 못 알아들었다 해서 우리는 풋 하고 웃었다. 동쪽으로 난 스테인리스 글라스에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신 예수님의 형상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잊지 말라는, 강렬한 재의 수요일 의미가 이해인 수녀님의 ‘바다 일기’와 멋지게 어울려 있음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