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하고픈 약자…우리를 옥죄는 것에서 벗어나는 걸 보여줬다”
1년 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동물원에서 탈출한 뒤 뉴욕 도심에서 생활하며 현지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수리부엉이 ‘플라코'(Flaco)가 지난 23일 세상을 떠났다.
25일 뉴욕타임스와 AP통신 등 보도를 종합하면 플라코는 지난 23일 미국 뉴욕 맨해튼 웨스트 89번가에 있는 한 아파트 옆 바닥에서 해당 건물 관리소장에 의해 발견됐다.
당시 플라코는 숨이 붙어 있었지만, 건물 주민이자 조류학자가 관리소장의 연락을 받고 급하게 달려와 현장에 도착했을 때쯤 숨을 거뒀다.
브롱크스 동물원 측은 부검 결과 ‘급성 외상성 손상’이 사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건물 외벽에 부딪혀 추락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다만, 쥐약에 중독됐거나 전염병에 노출됐을 가능성도 있는 만큼 추가 정밀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동물원 측은 부연했다.
2010년 노스캐롤라이나 조류 보호구역에서 태어난 플라코는 수컷 수리부엉이로, 다음 달 14살을 맞을 예정이었다. 수리부엉이 수명은 20년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그간 센트럴파크 동물원에 갇혀 살던 플라코는 작년 2월 2일 밤 누군가 파손해 놓은 보호망 사이로 우리에서 탈출했다. 보호망을 훼손한 사람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동물원 직원들은 플라코의 탈출 직후 먹이와 다른 수리부엉이 울음소리 등으로 유인해 플라코를 포획하려 했지만, 플라코는 ‘유혹’을 이기고 센트럴파크 야생에서의 생활을 선택했다.
새장에 길들어 있던 만큼 뉴욕 도심 한복판에서 자력으로 생존할 수 있을지 우려가 컸지만, 쥐를 사냥한 흔적을 남기는 등 사람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깨고 ‘홀로서기’에 성공하는 듯했다.
뉴욕 도심에서 목격된 플라코.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해 11월에는 처음으로 센트럴파크 밖에서 플라코가 목격되기도 했다.
주택 창가에 앉아 건물 안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소셜미디어에 공유되면서 ‘엿보는 톰’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뉴욕의 건물 사이를 비행하거나 깃털을 휘날리는 플라코는 뉴요커들에겐 자유의 상징처럼 여겨졌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작은 아파트에 사는 많은 도시 주민이 더 넓은 공간에 대한 욕구를 플라코에 투영했다”며 이민자들의 경우 도심에 적응해 가는 플라코에게서 자신이 겪고 있는 고단한 삶의 단면을 보기도 했다고 묘사했다.
‘응원하고픈 약자’, ‘인생 2막을 쓰는 데 성공한 영웅’, ‘디즈니 각본에 어울리는 등장인물’ 등 플라코는 뉴요커들에게 매력적인 서사의 주인공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생전 플라코가 특별히 좋아했다”는 센트럴파크 내 한 참나무에는 이번 주말 플라코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나무 밑동에는 털 부엉이 인형, 연필로 그린 플라코 초상화, 알록달록한 꽃 등이 놓였다.
추모객들은 “플라코의 영원한 날갯짓”에 작별을 고하는 한편 “마법 같은 여정을 목격할 수 있었던 모든 사람의 마음에 기쁨을 선사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편지에 남겼다.
브리엔 델가도(34)는 플라코에 관한 동화를 쓰고 있다며, “플라코는 우리를 방해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