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인생배우기 (25)
‘I’m Sticking With You’ 도서관에서 이 그림책 제목을 보자마자 떠오른 것은 노래였다. “I’m~ sticking with you. Cause I’m made out of glue~ ”로 시작하는 노래, 미국에서 1960대에 활동한 록밴드-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동요 같은 느낌이 나는 노래이다. 혹시 이 노래가사로 만든 그림책인가 하고 글쓴이를 확인하니, 국제적인 베스트셀러 영국작가 ‘스므리티 프라사담 홀스’ 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그림책 내용은 노래 가사처럼 너에게 딱 붙어서 무슨 일이든지 함께 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림책과 노래는 많이 다르다. 너에게 붙어서 떨어지지 않겠다는, 얼핏 들으면 집착에 가까운 관계가 어떻게 진정한 사랑이 되는지 그림책은 사랑스럽게 보여준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나도 따라갈 거야. 네가 뭘 하든지 난 너한테 딱 달라붙어 있을 거야.”라고 덩치가 산 만한 갈색 곰이 아주 작은 다람쥐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다짐한다. 둘이 어떻게 만나 친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곰은 다람쥐의 모든 행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하지만 너무 다른 덩치 탓에 다람쥐는 곰과 시소를 타다가 하늘로 튕겨 나가기도 하고, 곰의 재채기에 집이 부서지기도 했으며, 얼음산에서 남은 케이크를 혼자 먹어버린 곰 때문에 굶어야 한다.
그러다 다람쥐는 곰에게 말한다. “사실은, 곰아! 나 잠깐 혼자 있어야 할 것 같아. 괜찮지?” 다람쥐 말에 놀라서 두 눈이 둥그레졌지만, 곰은 “알았어. 그렇다면…” 하고 떠나준다. 곰 없이 다람쥐는 홀가분하고 걸리적거리는 것 없는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한다. 그러나 얼마 후 다람쥐는 곰이 없는 생활이 얼마나 헛헛한 지 깨닫는다. ‘네가 없으면 누가 내 말을 귀기울여 들어 줄까? 누가 나를 항상 좋아해 줄까?’ 라며 다람쥐는 곰을 찾아가 매달리고 애원한다. 그리고 마침내 둘은 함께 구멍을 메우고, 함께 망가진 곳을 고치고, 절대로 헤어지지 않고, 소파와 쿠션처럼, 도넛과 잼처럼, 시계랑 시곗바늘처럼 딱 달라붙어 사는 가족이 되기로 한다.
다시 록밴드-벨벳 언더그라운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룹은 1964년에 보컬 루 리드와 여러 악기를 담당한 존 케일이 만나 4인 밴드를 결성하고, 1967년에 1집 앨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를 낸다. 재밌게도 이 앨범은 팝 아트 미술가 앤디 워홀이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는 앨범 자켓에 유명한 바나나 그림을 그렸고, 독일의 모델 출신 가수 니코를 데려와 보컬로 참가시켰으며, 수록곡 제작에 많은 조언과 제안을 했다고 한다. 지극히 전위적이었던 이 앨범은 평론가와 대중들에게 외면 받아 망했다. 그래서 일까, 팀은 해체되고,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 그들의 음악이 예술적으로 인정받을 때까지도 팀원들 간의 불화가 화제였다. 그들의 〈I’m Sticking With You〉가 사랑이 아닌, 각자의 집착과 아집으로 끝나버린 이유를 그림책 속 곰의 자세에서 찾을 수 있다.
서로 너무 다르다는 것은 불편하다. 다람쥐를 열렬히 사랑하는 곰이라고 해서 불편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마냥 함께하고 싶어서 참았을 곰에게 다람쥐는 혼자 있고 싶다고 말했고, 곰은 아무 말 없이 떠나준다. 그리고 기다린다. 기다림, 진정한 사랑은 이 기다림에 있고, 이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서 성숙해진 둘이 다시 만났을 때 영원한 사랑을 꿈꿀 수 있다. 새침데기처럼 굴기도 하지만 다람쥐는 곰의 진심과 소중함을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함께하면서 점점 잃어가는 것들이 보인다. 자신만의 공간, 자신만의 시간, 취미, 결국 자신까지 사라질 것 같아 두렵다.
그림책 일러스트, 스티브 스몰이 그린 커다란 곰과 너무 작은 다람쥐는 곰의 큰 사랑과 함께 불만 가득한 다람쥐가 아니라, 불안한 다람쥐를 보여준다. 다람쥐가 곰에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말할 수 있는 것은 곰의 사랑을 믿기 때문이다. 〈내 마음 좀 들어 볼래?〉 한국에서는 이 그림책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는 게 사랑이다. 사랑한다면 말해야 하고,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