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한국과 특히 다른 점을 느낄 때는 상당수의 공공시설이 이용료가 아닌 ‘기부금'(donation)을 받는다는 점이다.
미국에 와보니 예상외로 기본요금을 내지 않고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이 적지 않았고, 관리 상태도 좋은 편이어서 놀랐다. 이런 시설들은 대부분 공공 재단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고, 방문객들에게 기부금을 내줄 것을 권장했다.
사립이 아닌 공립 학교조차도 기부금이 학교 운영에 큰 축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아이가 다니는 공립 초등학교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학비가 없고 급식도 공짜로 주는 데다, 소외계층 학생에게는 방과 후 돌봄 프로그램도 무료로 제공한다.
다만 학교 측은 다양한 모금 이벤트를 마련해 학부모들에게 기부금을 내달라고 요청한다.
주(州) 정부나 카운티 등에서 지원받는 예산이 있지만, 일부는 자체 운영비로 충당하는 모양인지 기부금이 아이들의 예체능 교육과 특별활동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에 쓰인다고 학교 측은 설명했다.
최근에는 학교에서 일주일간 ‘리더톤'(Read-A-Thon)이라는 독서·모금 활동을 벌인다고 공지했다.
‘마라톤’처럼 아이들이 계속 책을 읽고 독서 시간을 매일 기록하게 하는 행사인데, 이를 매개로 학부모와 주변 사람들이 학교에 기부금을 내도록 권장하는 프로그램이다.
아이의 이름으로 “리더톤 행사에 기부해 주세요”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조부모나 친척·지인들에게 보내게 하고, 이들로부터 기부금을 받는 식이다.
필자는 미국에 기부를 요청할 만한 친척이나 지인이 없어 학교에 직접 기부하는 것으로 이 활동을 끝냈다.
특징적인 것은 이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사이트에서 학급별 총모금액을 공개하고 줄을 세우는 것이다.
다행히 학생별 모금액까지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모금(기부)액에 따른 차별 대우가 있었다. 리더톤이 끝난 뒤 학교 안에 에어바운스 등 놀이시설을 마련해 아이들이 방과 후 잠시 놀 수 있게 하는 행사를 여는데, 기부액이 125달러가 넘어야 이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1회 기부금으로는 적지 않은 금액으로 느껴지는데, 그 정도로 낼 여력이 안 되는 가정의 아이는 다른 친구들이 자기만 빼고 신나게 놀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싶었다.
지상 최대의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에서 기부 활동이 사회의 온기를 유지하게 하고 약자를 보듬을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밑바탕임은 틀림없다.
여기에 특유의 경쟁을 진작하는 문화가 결합해 기부 금액으로 줄을 세우는 것도 그 취지를 고려하면 얼마간 이해가 된다.
다만 기부액을 공개함에 따라 빈부 격차도 어느 정도 드러나게 된다는 점에서는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물론 아이가 리더톤을 하면서 책 읽기에 한층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연합뉴스 임미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