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며칠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아니나 다를까 오늘 아침에 부는 바람에서는 봄기운이 완연하다. 어느새 집앞 잔디에는 파란 색들이 움칠거리고 겨우내 맨가지로 서있던 동백에서는 붉은 꽃들이 하루새 탐스럽게 피어 올랐다. 파릇 붉긋한 봄색깔에 부드럽게 뺨을 감싸는 바람을 맞으니 봄처녀들이 나물캐러 나갈 수 밖에 없는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살다 보면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때가 있다. 특히 계절이 바뀌는 시기가 되면 그 증상은 더 심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봄을 타는 사람, 또 가을을 타는 사람이라는 말로 떠나고 싶은 마음을 대놓고 변명한다. 이런 일탈을 꿈꾸는 것은 내 탓이 아니라 순전히 날씨 탓이라고 항변하는 것이다.
날씨를 끌어 들이면서까지 우리는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어한다. 가까운 산으로, 들로 떠나기도 하고 그것마저 안된다면 지인들과의 맛집 탐방과 같은 이벤트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슬금슬금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마냥 가슴 속에서 올라오는 알수 없는 설레임을 어째서 주체할 수 없는 것일까 …무엇때문에 일탈을 꿈꾸고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려 하는가…
오래전 느닷없이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던 친구가 생각났다. 그때만 해도 편리해진 지금과는 다르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순례 그 자체였다. 무거운 배낭을 등에 지고 자신이 정한 루트를 따라 제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걷고 또 걸어야 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곳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한 시절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낯선 길로 별다른 이유도 없이 떠나겠다는 친구를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얼핏 생각하면 무슨 문제라도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친구의 여행길은 많은 사람에게 의구심을 자아냈다.
하지만 친구는 너무도 평안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제법 높은 직위의 안정된 직장인이었고 아들은 신부님이 되기 위한 마지막 단계를 남겨두고 있었다. 딸아이도 순조로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기에 친구의 순례 여행은 너무도 뜻밖의 결정으로 다가왔다.
우리 모임 그 누구도 친구의 여행 제안에 뜨아한 반응을 보였을 뿐 그 고행길에 동참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는 용감히 여행길에 올랐다. 거의 30 여일이나 되는 장기간의 여행을 떠나는 친구의 얼굴에는 두려움보다는 설레임이 어려 있었다. 그 설레임은 잠시나마 나도 새로운 낯선 곳으로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여행길에서 친구는 사진을 몇장 보내 왔다. 아직도 선명한 이미지로 내 뇌리에 남아있는 그것은 바로 자유로움이었다. 몸집이 왜소한 친구는 자기 키보다 조금 적어 보이는 커다란 배낭을 어깨에 메고 지팡이를 집고 산등성이에 서 있었다.
보이는 것은 푸른 하늘이고 주변에는 약간의 푸른 풀들이 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 구름위로 살짝 날아 올라 가뿐히 서 있는 듯 아무 구속도 없는 혼자 만의 세계에서 맛 보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녀 혼자 만의 세상에서 가득 찬 자유로움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듯 행복해 보였다.
친구를 다시 만난 것은 그녀가 여행에서 돌아 오고 난 후 열흘 정도가 지난 날이었다. 친구의 얼굴은 많이 수척해 있었다. 몸집 역시 야위어 있었다. 워낙 마른 몸집이 더 앙상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기쁨으로 반짝이고 있었고 온몸 전체 에서는 활력이 넘쳐났다.
나는 못내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뭣 때문에 순례 여행을 간거야? 헌데 친구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냥, 봄바람이 살랑거려서 어디론가 가고 싶었어 … 우리는 마주 보고 웃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지만 친구의 웃음에는 넘쳐나는 즐거움이 묻어 있었다.
친구의 산티아고 여행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친구가 냈던 그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 매년 새로운 봄바람이 불면 알수 없는 설레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상상을 하곤 하지만 아직도 난 제자리다.
올해도 역시 봄바람이 설레임을 그득 안고 불어댄다. 동네 산책길에서 봄풀 냄새에 취하고 갓 심어진 꽃 향기에 미소지으며 오늘도 나는 나만의 산티아고 길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