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도서관에서 전자책을 빌려볼 수 있다고 해서 어떻게 빌려 볼 수 있는지 구체적인 도움을 찾았다. 역시 찾는 자가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열린다. 그래서 종이 책이 아닌 소설을 내 아이패드에서 읽으니 글씨도 크고 다루기도 편하고, 한글로 번역된 두꺼운 장편 일본 소설을 3일 만에 다 읽었다. 〈녹나무의 파수꾼〉이 소설 이름이고 작가는 히가시노 게이코이다.
‘레이토’라는 이름의 20 대 청년은 불법 주거 침입에 절도 미수로 체포되어 감옥에 갈 처지가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유부남과 사이에서 사생아로 그를 낳아 홀로 키우다 병사했다. 악조건 속에서 뒤틀리게 자란 그가 청년이 되어 감옥을 들락거리는 악순환의 삶이 시작되려는 위기에서 예상외의 사건이 발생하여 그를 악순환을 벗어나 선순환의 삶을 살게 한다.
생판 모르고 지나던 그의 어머니의 이복 언니, 그의 이모가 나타나 변호사를 써서 그를 감옥에서 구출하고 그를 ‘녹나무의 파수꾼’으로 일할 선택을 준다. 이모의 소유인 그 녹나무는 영험해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보름과 그믐에 녹나무에 와서 기념했다. 수 백 년 묵은 녹나무는 줄기가 어마어마 하게 커서 줄기에 굴이 있고, 그 나무 굴속에 촛불을 켜고 기념을 하면 신비한 효력이 있다고 오래전부터 알려졌다.
녹나무를 기념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있는 것을 나무에게 들려주고(예념), 친척 중에 기념한 자의 뜻을 알려고 오는 자에게 전달(수념) 하는 신통한 능력이 알려져 많은 사람들의 예약과 실행이 끊이지 않는데, 파수꾼인 레이토는 그런 과업을 맡아 한다.
회사 사장인 아버지가 그믐밤에 어딘가로 사라지고 다른 여자를 만나는 증거를 잡은 딸 유미가 아버지를 미행하다가 녹나무에 가서 기념하는 아버지를 발견하고, 녹나무 파수꾼 레이토를 만난다. 레이토와 유미가 협력하여 알아 낸 것은 유미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불륜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죽은 형의 미완성 곡을 완성시키려는 것을 알고 둘은 적극 돕는다.
유미의 할머니가 첫 아들을 키울 때, 자신이 못 이룬 피아니스트 꿈을 첫아들인 유미의 큰 아버지에게 이루게 하려고 어려 서부터 피아노를 가르쳤다. 어린 아들은 피아노 경연에서 상도 타고 재능이 알려지고, 음대에 들어간다. 음대에서 재능 있는 자들과 경쟁에서 방황하다가 그는 작곡으로 전공을 바꾸고 엄마를 위해서 곡을 만들며 녹나무에 기념을 다니다 죽었다.
유미와 유미 아버지는 녹나무 기념을 통해 죽은 형의 미완성 곡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전문 작곡가와 전문 피아니스트의 도움도 받는다. 드디어 곡이 완성되었을 때 전문 피아니스트는 완성된 곡을 연주하고 연주를 들은 치매에 걸린 유미의 할머니는 큰 아들의 명곡을 인식하며, 큰 아들의 실패에 위로를 받는다.
소키라는 청년이 녹나무를 통하여 죽은 아버지, 생물학적으로 친부가 아닌 길러준 아버지의 예념을 수념하는 과정의 어려움을 파수꾼 레이토가 도와 그의 아버지의 뜻을 깨닫게 도와주어, 소키는 아버지의 회사를 이어받게 한다.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 그런 노래 구절이 있다. 내가 살던 충청도 산골 마을 입구에 큰 성황당 나무가 있었고, 사람들은 성황제를 지내며 복을 빌었다.
녹나무에 기념, 예념, 수념을 하는 의식은 복을 비는 것과는 다르다. 녹나무는 사람들 가슴에 있는 이야기와 뜻을 들어주고, 그것을 들으려는 자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 수념의 과정에서는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끼게 하게하고, 회상과 기억의 사건을 문제와 연결하여 영감을 얻게 한다.
소설 속 세 주인공들, 파수꾼인 레이토, 엄마의 부추김으로 음악을 전공하다 실패한 형의 미완성의 곡을 완성하려는 유미의 아버지,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으려는 양아들인 소키, 이들은 모두 녹나무의 도움을 받아 새 삶을 얻고 명곡을 완성하고 아버지의 뜻을 찾아 성공한다.
레이코는 감옥을 들락거리며 살 운명에서 벗어나 새사람이 된다. 녹나무의 파수꾼으로 일하는 과정에서 이모의 치매 초기 상황과 그녀가 연루된 재벌그룹에서의 역할을 알게 되고 서서히 재벌그룹 속에 자신이 설 자리로 나가게 된다.
녹나무 덕으로 유미와 그의 아버지도 죽은 큰 아버지의 미완성 곡을 완성하여 할머니에게 큰 아들의 곡을 들려준다. 자신과 큰아들이 피아니스트가 되는 꿈은 실패했지만, 큰 아들이 만든 곡을 들으며 치매에 걸려 죽어가는 할머니는 위안을 받는다. 소키도 녹나무 기념 때문에 죽은 양아버지의 뜻을 알게 되고 아버지의 회사를 이어받게 된다.
탐정 소설가인 히가시노 게이코는 녹나무의 파수꾼에서도 사건을 흥미롭게 이어가고 재미가 있어 계속 읽게 한다. 다 읽었을 때 주인 공들이 녹나무의 도움으로 더 행복한 삶을 살게 되어 가슴에 따스함이 느껴진다. 나에겐 아이패드로 전자책을 빌려서 재미 있게 읽어본 첫번째 책이 녹나무의 파수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