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기대해. 너 이야기가 보스턴 신문에 나올 거야”
“그래? 나도 매일 글을 쓰는데 오늘 주제는 너야”
전에 만났던 프리랜서 기자 마크와 반가운 재회
# 14일째
어젯밤은 성 니콜라스 알베르게에서 잤다. 깊이 잠든 밤. 바람처럼 몇 사람이 들어왔다. 본처 수도사들이었다. 출타했다가 수도원으로 들어가던 중, 잠시 쉬려고 들어온 것이리라.
촛불을 켜고 조용히 기도문을 외운다. 그리고는 송가 하나를 부르는데 영어다. “someone like me, 우-우-우, someone like me 우-우-우” 이렇게 슬픈 송가도 있단 말인가? 얼마나 슬픈지 슬픈 대로 슬펐다. 그리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신비한 만남, 신비한 길에서 겪은 신비한 만남이랄까? 이런 만남을 뒤로하고 길을 나섰다.
간혹 말을 타고 가는 순례자도 있다.
여전히 새벽이다. 새벽길을 걸어본 적이 있으신지? 달그림자와 함께 길을 걸어본 적이 있으신지? 이른 새벽, 카미노의 길은 신선이 걷는 길이다. 요정이 걷는 길이다. 신선이 걷고, 요정이 걷는 이 길을 홀로 걸었다. 행복하도록 걸었다.
동이 튼다. 순례자 하나가 다가온다. 마크, 전에 만난 적이 있던 마크였다. 그는 미국에서 유명 인사다. 젊었을 때는 영화배우를 했고, 지금도 프리랜서 기자를 하면서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를 기사로 쓰고 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미국 신문에 기고하고 있다.
한참을 함께 걸었다. 그와의 대화는 아주 진지했고 편했다. 오랜 시간 후, 헤어질 때 그는 말했다. “송, 너의 이야기가 다음 주일 보스턴 신문에 나올 거야.”
나도 말했다. “마크, 나도 매일 일기처럼 글을 쓰는데, 오늘 글에는 너를 많이 쓸 거야!”
“그것을 영어로 번역해서 보내줄 수 있겠니?”라면서 친절하게 이메일 주소와 전화번호를 남긴다.
사람의 만남은 참으로 묘한 것! 언제 만나고 언제 헤어지는지 모른다, 그러니 언제든지 아름다운 마음과 정성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마음으로 만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헤어지고, 그러다가 다시 만나고 또 헤어지고.
카미노 길 곳곳에 설치된 여러 조형물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 15일째
좋은 날, 새벽길을 걷는다. 새도 잠든 새벽에 순례자의 발자국 소리, 그 소리에 개가 짖는다. 저 소리조차 정겹다. 여태까지도 그랬지만 오늘은 특히 침묵하며 걷기로 했다. 오직 침묵 속에서 침묵의 소리만 들으며.
침묵 속에 걷는다. 앞에도 뒤에도 아무도 없다. 시간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낀다. 한 무리의 말 탄 자들이 지나간다. 말을 타고 콤포스텔라 성당까지 가는 순례자들이다. 내 옆에서 휴식을 취해도 말을 섞지 않았다.
늘 만나는 성당. 이곳은 수도원을 겸하고 있다.
큰 마을에 도착했다. 모두들 이 마을에서 쉬지만 나는 다음 마을까지 간다. 이때 홀로 걷는 맛이 얼마나 좋은지. 카미노의 길이 호젓하지만, 특히 이 시간은 호젓함의 제곱이다.
생각한다. 말 안 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편한지, 침묵의 소리만 듣고 사는 것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소리 없는 아우성은 그렇게 잘 들으면서 침묵이 내는 이 값비싼 소리는 왜 못 듣는지. 침묵의 소리, 그 소리는 창세 전, 태초에 있던 그 소리라는 것을 왜 모르고 사는지.
저기 알베르게가 보인다. 침묵의 시간도 끝이 난다. 알베르게에 등록을 하고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받는다. 씻고 조용한 곳을 찾았다. 저기 조용한 곳이 있다. 아무도 없구나, 했는데 한 사람이 있다. 눈에 익다. 가까이 갔더니 어제 헤어진 마크였다. 그는 아예 컴퓨터 자판을 가지고 다니면서 자판을 폰에 연결하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나를 보고 엄청 반가워한다.
카미노 길을 따라 강처럼 길게 이어진 수로. 흙길, 물길이 함께 간다.
“송, 나는 오늘 침묵 가운데 홀로 걸었어. 다른 때는 인터뷰 때문에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고, 이 사람 저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걸었는데, 오늘은 혼자, 침묵 속에서 걸었어.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생각이 확실하게 정리가 되는데, 지금도 글이 술술 써져.”
“그래, 마크. 이것이 카미노의 진정한 맛일 거야. 나도 침묵 속에서 혼자 걸었어. 침묵의 소리를 들으면서. 얼마나 큰 자유와 평화를 누렸는지 몰라. 내일도, 모레도 그렇게 걸었으면 좋겠어.”
이어진 침묵. 침묵 속에서 우리는 글을 썼다. 그는 그의 글을 썼고 나는 나의 글을 썼다. 한참이 지난 후, 그는 물었다.
“송, 이럴 때 생각나는 노래 없어?” “있어, Sound of silence.” 그는 익숙하게 유튜브에서 이 노래를 찾아 꺼냈다. 사이먼과 가펑클은 언제 들어도 감미롭다.
우리는 나이를 잊었다. 침묵의 소리 때문에. “내 친구 어두움이 이 도시를 찾아오면 나는 거리로 나선다. 네온사인과 가로등이 하나씩 하나씩 꺼지면 적막이 내려온다. 그 적막 속에 들려오는 소리, 그 소리! 더 사운드 오브사일런스(The sound of silence)!”
글·사진=송희섭 / 애틀랜타 시온한인연합감리교회은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