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은 청소년뿐만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감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세계적인 고전이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 아름다운 나비로 거듭나기까지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교훈적인 책이다. 한마디로 삶과 진정한 혁명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옛날에 줄무늬애벌레 한 마리가 오랜 동안 자기의 둥지였던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다. “세상아, 안녕…”하고 그는 말했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곧 자기가 태어난 곳인 나뭇잎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몇날 며칠을 반복하며 살이 오를 대로 오른 줄무늬애벌레는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그저 먹고 자라는 것만이 삶의 전부는 아닐 거야. 이런 삶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해. 그저 먹고 자라기만 하는 건 때분해.” 애벌레는 나무에서 내려와 이곳저곳을 탐방한다. 흙, 곤충, 구멍 등 세상의 온갖 것들은 매력적이었지만, 애벌레가 찾는 그 어떤 것은 아니었다.
그때 줄무늬애벌레는 애벌레 떼를 발견하게 된다. 애벌레들은 기둥 꼭대기에 올라가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었지만, 그 꼭대기는 구름에 가려져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줄무늬애벌레는 모두가 저곳에 가려 하고, 본인이 찾는 것이 어쩌면 저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행렬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그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줄무늬애벌레는 그 틈에서 밟히고, 차이고, 떠밀렸다. 그곳에는 두 개의 선택지밖에 없었다. ‘밟고 올라가느냐, 아니면 발밑에 깔리느냐.’ 이 상황에서 애벌레들은 서로를 친구가 아닌 거추장스러운 장애물로 여긴다.
노랑애벌레와 줄무늬애벌레는 꼭대기에 오르는 것이 자신들의 진정한 소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기둥 아래로 내려간다. 노랑애벌레와 줄무늬애벌레는 기둥에서 내려와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줄무늬애벌레는 상대에게 지겨움을 느끼고 다시 기둥 위에 올라가 보기로 한다. 기둥에서 떨어진 커다란 애벌레들이 나비만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줄무늬애벌레는 기둥에 올라가는 것을 원했고, 노랑애벌레는 땅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노랑애벌레는 줄무늬애벌레가 떠난 후 슬픔에 잠겨있다가 무슨 일이든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길을 떠난 노랑애벌레는 늙은 애벌레가 털투성이 자루 안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노랑애벌레는 늙은 애벌레를 도와주려 하지만, 늙은 애벌레는 나비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며 노랑애벌레가 미래에 나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누에의 삶을 알고 있는가? 누에는 완전 탈바꿈을 하는 곤충이다. 알-애벌레- 번데기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나비가 되는 곤충이다. 그런데 그 탈바꿈의 과정 속에서도 고치 안에 있는 번데기, 번데기로 변해가는 과정이 가장 고독한 순간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빛도 소리도 없고, 오직 어둠과 적막 뿐인 그 시절, 자신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외로움만 삭이고 있는 그때. 그러나 그때는 가장 자유로운 날을 예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비록 그때는 어둠 속이지만, 하늘을 훨훨 날아다닐 나비가 되길 기다리고 있는 희망이 가득한 시기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는 건 비단 누에 뿐만이 아니다. 잠자리나 모기는 물 속에서, 베짱이나 매미는 어두컴컴한 땅속에서 각기 숱한 인고(忍苦)의 세월을 거친 뒤, 비로소 날개를 갖게 되는 곤충이다. 말하자면 고독과 고통을 견뎌내야만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다는 자연이 주는 교훈인 것이다.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하리라 생각해 본다. 우리들이 고독하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들이 어쩌면 내일의 희망을 위해 필요한 시간이 아닐까.
“어떻게 해야 나비가 될 수 있나요?” 한 마리 애벌레의 상태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 만큼 절실히 날기를 원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란다.” “그러면 내가 한 마리 나비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요?” “나를 잘 보아라. 나는 지금 고치를 만들고 있단다. 내가 마치 숨어버리는 것 같이 보이지만, 고치란 피해 달아나는 곳이 아니란다.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잠시 머무는 여인숙과 같은 거야. 애벌레의 삶으로 결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니까.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도약이지. 다만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뿐이지.” 도약을 위한 변화, 거기에 따르는 고통은 참을만 하다. 나비가 되기 위해서 애벌레는 컴컴하고 외로운 누에고치 속에서 오랜 세월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
이 책은 사실 동화로 널리 보급되었지만, 이런저런 의미를 따져볼 때 어린이보다는 오히려 어른에게 큰 감동을 준다. “이 책은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진정한 자아를 찾아 나선 한 애벌레의 이야기입니다. 그 애벌레는 나 자신, 그리고 우리 모두를 닮았습니다.” 저자의 말이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바람 부는 날의 잎새를 떠올렸다. 정처 없이 흔들리면서도 한 줌의 열매를 맺기 위해 제 한 몸을 기꺼이 불태우는 소망의 잎새… 지금 창문을 열고 어둠 속에 잠긴 나무들을 만나 보라. 마치 잠자듯 다소곳한 모습만 보이고 있다 할지라도 나무에게 겨울은 봄의 화사함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봄날의 꽃잎들은 모진 바람과 눈보라를 참고 견뎌낸 결과인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고운 꿈이 없다면 인생은 정말 삭막할 것이다. 마치 꽃밭에 꽃이 없는 것처럼 황량하고도 허전할 것이다. 그러므로 소망이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서 꽃 피고 열매 맺게 하는 우리 마음의 정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