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중 잘못된 기억 실수도…’한국 뿌리’ 말할 때 미세하게 떨려
조 바이든 대통령의 기밀유출·불법보관 의혹 수사 결과 보고서로 대선 한복판에서 뜻하지 않게 정쟁의 중심에 선 한국계 로버트 허(51) 전 특별검사가 의회 청문회에서 보인 태도가 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허 전 특검은 푸른색 양복과 라벤더색 넥타이 차림으로 12일 워싱턴DC 레이번 하원 빌딩에서 열린 하원 법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했다.
증인용 테이블 가운데에 홀로 앉은 그는 수사의 공정성을 둘러싸고 민주당과 공화당 양측 의원들이 서로 ‘정반대의 이유로’ 목소리를 높이는 와중에도 동요 없이 차분한 모습으로 증언에 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허 전 특검은 의원들 앞에서도 비판자들을 달래려 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NYT는 허 전 특검의 이날 의회 답변 태도를 놓고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추려 했고, 정밀했다”고 표현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보고서가 바이든 대통령을 겨냥한 당파적 공격이란 민주당 의원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증거가 있는데도 바이든 대통령을 불기소한 건 잘못이란 공화당 측의 비판도 잘못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는 것이다.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에 의해 특검에 임명된 뒤 1년간의 수사를 거쳐 지난달 8일 수사 보고서를 발표한 허 전 특검은 이날 “당파적인 정치는 내 업무의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회의적인 배심원단 앞에 선 베테랑 검사를 연상시키는 느긋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스스로를 변호했고, 단조롭고 사무적인 그의 말투는 여야로 나뉘어 공방을 주고받는 하원 법사위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고 NYT는 짚었다.
한 보수진영 소속 의원은 허 전 특검이 공화당원이란 점을 무시한 채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워싱턴 엘리트층을 지키는 ‘근위병’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기도 했으나, 허 전 특검의 이런 태도를 흔들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청문회 증언을 기다리는 로버트 허 특검. 로이터
NYT는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 법무부 당국자로 활동했던 허 전 특검의 전 직장동료들은 그가 스트레스가 많고 위험이 큰 상황일수록 더욱 냉철해지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허 전 특검이 바이든과 공화당을 상대로 청문회에서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더힐은 “허 전 특검은 이날 등장한 유일하게 확실한 승자였다”면서 “진지하고 침착한 증언과 실수를 하지 않은 것, 특정 정파의 편에 서지 않으려는 명백한 의지를 보인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미국의 대표적 진보성향 매체 중 하나인 NYT는 허 전 특검이 수사보고서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악의는 없지만 기억이 나쁜 노인’으로 기술해 고령 논란에 불을 붙였지만, 그 자신도 기억에 문제가 있는 모습을 보였다고 꼬집었다.
이날 청문회 내내 빈틈없는 태도를 유지했지만, 공화당 소속인 제임스 코머 의원이 바이든 행정부에서 백악관 법률고문으로 활동했던 데이나 A. 리머스를 언급하자 “그는 오바마 전 대통령 아래에서 그 직위를 맡았던 인물”이라고 잘못 반박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NYT는 허 전 특검의 담담한 표정과 달리 그의 몸은 의자 끝에 엉덩이를 걸친 채 긴장된 자세로 대결에 대비하고 있었다고도 전했다.
또 한국전쟁 이후 미국으로 온 부모와 관련된 이야기로 증언을 시작한 허 전 특검이 “이 나라(미국)가 아니었다면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은 매우 달랐을 것”이라고 말할 때는 느끼기 힘든 수준이지만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