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변기에서 쪼르르 물새는 소리가 들렸다. 쓰지 않을 때도 변기 물통 안에서 물새는 소리가 끊겼다가 다시 들렸다.
손잡이 누를 때 열려서 물탱크의 물이 변기로 내려가게 하는 고무판(Flapper)이 닫기는 부분에 틈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부분을 잘 닦았다. 그래도 또 쪼르르 물새는 소리가 들린다. 홈-디포에 가서 새 고무판을 사다가 바꿨는데도 또 쪼르르 소리가 들린다. 밤에도 들린다. 신경이 쓰인다.
아침 등산팀이 걷고나서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마실 때, 물새는 변기 고치는 이야기를 했다. 물 탱크 안에서 수도물을 열고 닫는 기기를 바꾼 이야기, 고무판을 바꾼 이야기, 고무판이 닫는 부분을 청소한 이야기, 배관공을 불렀더니 몇 백불 들었다는 이야기 등 다양한 경험담이 나왔다.
수돗물을 열고 닫는 기기는 작동되는 것 같아, 홈-디포에 가서 더 좋은 고무판을 샀다. 고무판에 까만 플라스틱 턱이 붙어있는 것이다. 플라스틱 턱에 접착제를 발라 밑 틀에다 접착하면 고무판과 사이에 틈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다.
내가 고무판을 찾아 들고 있을 때 백인 중년남자가 와서 변기 고치는 부품을 찾고 있었다. “변기에 물이 새서 고치세요?” “그래요. 부분을 갈아도 또 새서 전부 갈려 해요.” 그가 찾아 든 패키지 안에는, 물을 조정하는 기기, 고무판, 고무판이 닫는 관까지 다 있다. 고무판이 닫는 관을 갈려면 변기 물통을 분리해야 하고 그건 어렵지 않느냐고 하니 쉽다고 한다.
집에 와서 변기 물을 잠그고, 고무판이 닫는 부분을 닦고 말려서 새로 사온 플라스틱 턱을 덮어 붙였다. 접착제가 마르도록 두시간을 기다렸다. 다 고치고 나서 변기의 물을 틀었다. 이번에는 성공할 것 같았다.
변기의 물을 내리고 기다렸다. 쪼르르 소리가 또 난다. 이거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새 고무판을 몇개를 바꾸고, 고무판이 닫는 턱도 바꾸었는데 물이 새! 얼핏 화장실 벽에 걸린 거울에 내 얼굴을 보았다. 얼굴 표정이 찌그러졌다. 실망스러운 표정이다.
실망스러운 나의 얼굴 표정을 거울에서 보는 순간, 아차, 내가 아직도 나의 찡그리는 나쁜 버릇을 못 고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작은 일을 하면서 생각대로 안될 때 마다 실망하고 찡그린 얼굴표정을 만들다니, 제 맘대로 안된다고 짜증내는 어린애가 생각났다.
오랜 세월 살아오며 배웠다. 살아가는 순간마다 작고 큰 문제들을 항상 만난다는 사실을. 삶은 문제의 해결과정이라는 것을. 문제를 만날 때마다 화를 내고 찡그리는 버릇은, 불만의 호르몬 체질을 만들고, 면역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나가사끼라는 일본 여자 탁구 선수가 시합하는 유튜브를 보다가 그녀의 태도를 배우고 싶었다. 공을 잘못 치거나 실수할 때 진지하게 분석하지만, 화를 내거나 찡그리지 않는다. 잘 했을 때 이겼을 때는 웃는다. 정신을 집중할 때도 진지하기는 해도 표정을 찡그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이마는 반듯하고 얼굴이 밝다.
생각대로 안될 때 찡그리는 얼굴 표정을 짓는 버릇은 성장기에 가난하고 깨진 가정에서 자라며 전쟁도 겪는 시간들 속에서 나도 모르게 생긴 버릇 같다. 목줄에 매였다가 도망쳤으나 끊어진 철사줄을 목에 감고 숨어사는 개처럼, 나도 어두운 시절에 생긴 찡그리고 화내는 버릇을 아직도 완전히 고치지 못한 것 같다.
배관공을 업소록에서 찾아보다가, 홈-디포에서 만난 젊은이가 생각났다. 물통 안 물을 조절하는 기기, 고무판, 고무판이 닫는 틀, 세가지가 다 들은 패키지를 사가던 젊은이가 생각났다. 홈-디포에 가서 그 패키지를 45불에 샀다.
패키지를 사다가 다 갈았다. 물통 분리도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다 갈고 나서 기다렸다. 물은 더 이상 새지 않았다. 몇 시간 후에 다시 화장실로 가서 변기에서 물이 새나 지켜보았다. 안 샌다. 아내와 나는 문제를 해결해서 행복한 웃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기다려도 쪼르르 소리가 안 들리니 흐뭇했다.
살아 있는 순간엔 언제든지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문제가 생겼을 땐, 찡그리는 대신 살아있다는 증거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성실하게 해결하려 노력하되, 찡그리지 말고 화내지 말고, 한 방법으로 안되면 다른 방법을 생각하는 합리적인 생활인이 되도록 노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