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의대 증원 문제를 놓고 의사들을 돈만 아는 이익집단으로 악마화 하는 글이 많이 보여 참지 못하고 펜을 든다.
나는 의사다. 미국에서 의대 교수로 정년퇴직하고 1997년부터 8년간 아산병원에서, 2005년부터 3년간은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소아혈액종양/골수식 분야에 책임자로 일했다. 소위 말하는 필수의료부서였고, 병원에 계속 적자를 안겨주며 근무했었다.
당시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과 한 교수는 30~40대 의사들의 봉급이 3억5천 내지 5억으로 터무니없이 높아 이들의 수입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참고로 당시 나의 연봉은 모든 성과급을 합치더라도 1억 원이 조금 넘었다. 미국서 받던 것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지금 한국 의료파동의 핵심 쟁점은 소아청소년과 등의 필수의료 파탄과 지방 의료 붕괴가 아닌가 한다. 한국 의료의 평가지표들은 OECD 대비 거의 최고 수준으로 미주 한인들도 휴가를 내 한국에서 진료받기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최근 5년간 급격히 하락했다. 2019년까지는 정원을 채웠지만 올해 2월 3058명의 인턴 수료자 중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 지원자는 1.7%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지원자가 없으니 필수의료인 소아청소년과의 붕괴를 막을 수 있겠는가. 여기에 유례없는 낮은 출산율(2023년 0.72)과 낮은 의료수가 그리고 형사 또는 민사소송의 위험이 겹쳐 필수의료의 붕괴를 촉진하고 있다. 나의 경우 미국서 은퇴할 때까지 평생 한 번도 의료 소송에 휘말리지 않았는데 아산병원에선 근무하자마자 3개월 만에 몇 개의 의료 소송이 생겼다. 물론 전부 허황한 소송이었다.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들은 딱 두 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환자를 볼 때 비용인 진료수가를 100%로 올려주고, 열심히 진료했음에도 나쁜 결과가 나왔을 때 형사소송을 할 수 있게 한 현재의 법체계를 수정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요구는 무시하고 필수과에 의사가 모자라니 당장 내년부터 2000명을 증원하겠다고 정부가 발표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며 열심히 국정을 펼쳐온 것으로 안다. 하지만 충분한 근거도 없고 당장 실현할 수 없는 2000명 의대 증원 카드를 느닷없이 들고 나와 의료대란을 자초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찬성한다는 이유에서다.
오늘날 세계가 부러워하는 최고 수준의 의료시스템에 한 점 이바지한 것도 없는 그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왜 이리 서두르는지 이해가 안 간다. 총리나 경제부총리, 교육부 장관, 복지부 장차관 등 주변에 어느 한 사람도 의료 분야 경험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또 각계 종교자들을 만나 파업하는 전공의들을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말도 들린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전공의들이 자기들이 존재하는 이유로 생각하는 환자를 떠나야만 하는 절박한 이유에 관해 왜 직접 물어보지 않는가. 의료 정책구상엔 직접 환자를 돌본 경험이 있는 의사의 의견을 듣는 게 무엇이 문제인가. 그리고 2000명의 증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의대생 전원을 유급시킨다하고 또 전공의에 동조하는 의대 교수들도 법에 따라 불이익을 준다고 엄포를 놓는다.
의료인은 정부 마음대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공무원이 아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최고의 전문가들이다. 대통령은 이들 전문가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하루 속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표방해 온 윤석열 정부가 강력한 사회주의의 카드를 들고 나와 명령과 통제로 의료인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의도를 모르겠다. 내 눈에는 이번 의료 파탄이 정권 연장의 정치적 수단으로 보여 씁쓸하다. 한국 국민을 위해 의업에 종사하리라는 대망의 꿈을 접고, 하나 둘 국외로 떠나는 젊은 인재들을 보며 이들의 발길을 다시 고국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