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에 대한 편견이 면죄부 악용돼…공교육 통해 소수계 비하·차별 줄여나가야
캘리포니아선 아시아계 역사교육 의무화…막상 교실에선 가르칠 교사 없어 겉돌기만
캘리포니아주 공립학교 학생은 민족학을 필수로 배운다. 학생들은 이 교과를 통해 1992년 4·29 LA 폭동 당시 한인-흑인 갈등이 어떤 사회적 맥락 속에서 촉발됐는지, 어떤 정치적 영향을 끼쳤는지 생각할 수 있다. 당시 민족학 커리큘럼 승인을 위해 열린 공청회에서 시민단체들은 “오직 교육만이 비극적 증오범죄를 예방하고 대항할 수 있다”고 강조했었다.
아시안 증오범죄는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게 아시아인을 침입자나 외부인으로만 보는 시각에서 비롯된다. 근본적 해결책으로 경찰력과 처벌 강화가 아닌 ‘아시아계 역사 교육'(AAS)이 꼽히는 이유다.
러셀 정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교수는 “아시아계에 대한 몰이해는 우리를 질병 전파자, 공산주의자, 저임금 노동자, 첩자로 쉽게 인식하게 만든다”며 “이러한 광범위한 편견 자체가 증오범죄를 용인하는 면죄부로 악용된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K-12 공립학교에서 아시아계 역사교육을 의무화한 곳은 캘리포니아, 일리노이, 뉴저지 등 전국 10개 주에 불과하다.
15일 본지와 인터뷰를 가진 장태한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 소수인종학과 교수는 캘리포니아 각 교육구의 세부 커리큘럼 확정을 위한 자문을 맡았다. 지난해 제정된 법(AB 1354)에 따라 향후 3년 내에 K-12 공립학교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의 역사를 필수 과목으로 가르쳐야 한다.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와 일부 주립대학도 포함된다. 오렌지 카운티 애나하임 고등교육구는 2023학년도부터 전국 최초로 미주 한인사를 가르치고 있다.
아시아계 역사 교육은 캘리포니아주 교육 당국이 인종평등을 위해 내린 전향적 결정이지만, “막상 학교 현장에서는역부족”이라고 장 교수는 지적했다.
“공립학교에서 아시아계 역사를 가르칠 역량을 가진 교사가 없다”는 것이다. 교육 당국의 역사 이해도 부족으로 2020년 공개된 인종학 커리큘럼 초안에는 미주 한인사가 누락된 반면 미국 내 K팝의 인기 현상이 중심 주제로 담기기도 했다. 주 내 민족학 박사학위 과정이 개설된 대학은 버클리와 샌디에이고, 리버사이드 등 3곳에 불과하다.
역사 과목의 대부분은 인종 갈등을 흑백 이분법 논리로 다루고 있다. 장 교수는 “수백 쪽에 달하는 역사 교과서 중 아시아계는 대륙횡단철도를 놓은 중국인 노동자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내 수용소에 집단 감금됐던 일본계, 두 장면에만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이민 경험을 바탕으로 다문화 예술을 펼치는 한인 1.5세 허견 파슨스디자인스쿨 교수는 AAAJ(아시안아메리칸정의진흥협회) 주최 추모식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은 이 나라에 언제, 왜, 어떻게 오게 됐는지를 매번 설명해야 존재의 정당성을 입증받을 수 있다”며 “평생 자신의 에너지를 존재 증명에 소진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인 커뮤니티가 차세대 교육 사업의 일환으로 운영하는 한글학교도 대부분의 역사 교육이 ‘한국사’에 치중돼 있고, 한인 ‘이민사’는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과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순신 장군이 아닌 도산 안창호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안창호 선생은 한국사에서 독립운동가로 주로 기술되지만, 한인 이민사에서는 미주 최초의 한인타운인 파차파 캠프를 세운 위인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인종 역사와 문화가 공교육에서 균형있게 다뤄지면, 학교 안팎의 소수자 비하와 왜곡, 차별 사례가 줄어든다는 점은 다양한 실증 연구를 통해 뒷받침되고 있다. 장 교수는 “소수자가 사회적 차별에 맞설 근거를 내재하는 것이 역사교육”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인 등 소수계 청소년들은 유년 성장기 대부분을 인종차별적 환경에서 보내는데, 한인 이민의 역사적 맥락을 알지 못해 무력하게 차별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모 역시 이민 역사를 잘 알지 못하면, 자녀의 인종차별 경험을 어린 시절 흔히 겪는 또래 간 다툼으로 묵인하게 된다”고 장 교수는 덧붙였다.
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