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재미난 일들을 겪는다. 이번에 내가 체험한 기막힌 재회는 기쁜 일이지만 쉽게 웃지 못하는 아픔도 줬다. 나는 원래 운동을 좋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강하고 유연하게 유지하지 않으면 하루 일상이 거북스러워서 피트니스 센터를 다닌다. 센터에서 여러가지 운동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자연스레 인사를 나눈다.
지난 월요일, 요가 클래스 시작하기 전에 트랙을 걷다가 근 2년을 매주 요가를 하며 낯을 익힌 베티를 만났다. 함께 걸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또 한 요가친구 에블린이 조인했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라 지만 우리는 셋이서 수다 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돼서 인식의 접시를 깼다.
우리는 30년 전에 맥스웰 부대에 있는 CCAF (Community College of the Air Force), 에서 함께 근무했다. 1972년에 연방정부가 설립한 세계에서 가장 큰 지역공군대학은 30만명이 넘는 현역, 예비군, 방위군 공군 사병들을 위한 2년제 대학 Associate of Applied Science 프로그램을 관리한다. 전 세계에 발령나가 복무하는 군인들이 지역 대학에서 필수과목을 마치면 그 서류를 CCAF에 보내고 CCAF 교육관들이 엄격한 검사를 거쳐서 해마다 2만2천명이 넘는 군인들에게 2년제 준학사 학위를 수여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마친 군인들은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해서 전문과목을 공부하고 대학졸업생이 된다. 그들 중에 사병에서 장교로 승진하는 숫자가 무척 많다.
베티와 에블린은 교육담당 군무원이었고 나는 군인으로 4년을 한 건물에서 일하며 자주 봤었다. 걸음을 멈추고 삼각형으로 서서 서로를 자세히 살피니 주름살 너머로 어렴풋하지만 과거의 모습이 나타나 우리는 껴안고 풀쩍 뛰며 반가워했다. 세상에 이럴 수가… 같이 운동하면서도 쉽게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우리의 외모는 변해 있었다. 우리 중 한사람도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사실을 “그냥 나빠진 시력 탓으로 하자” 하고 또 한바탕 까르르 웃었다.
빠르게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소식을 나누다가 요가 클래스로 갔다. 근데 또 이건 무슨 우연인가. 요가 클래스가 인기 있어서 항상 20명이상이 붐빈다. 그래서 각자 미리 매트를 깔아서 자리를 차지하고 나서 트랙을 걸었는데 우리가 클래스에 들어가서 자기 매트로 가니 바로 옆자리로 우리 3명의 매트가 나란히 깔려 있었다. 도착시간이 다 달랐지만 이렇게 만나라고, 그리고 옆에 앉으라고 누군가가 안내했으니 얼마나 기막힌 인연인가. 요가가 끝난 후 모두에게 이 기막힌 재회를 알리고 우리 세 사람은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예전에 내가 군복을 입었을 적에는 어느 나라 출신인지 묻지 않았던 베티가 이번에는 물었다. 현대자동차가 이 지역에 공장을 짖고 차를 생산하면서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많아도 그들은 한국을 몰랐다. 요즈음 널리 퍼진 K문화나 음식을 전혀 접해본 적이 없는 두 여자에게 한국을 소개하려고 한식당에 그들을 안내했다. 김밥과 불고기, 그리고 모듬 튀김을 앞에 놓고 하나씩 소개했다. 그들은 속이 꽉 차 있는 김밥을 포크로 터뜨려서 하나하나 속 내용을 살폈고 불고기와 튀김은 조금 먹었다.
우리는 머리가 하얗게 변한 할머니들이 되었지만 베티가 가져온 앨범에서 튀어나온 예전에 일한 CCAF의 활기찬 분위기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낯익은 얼굴에서 우리의 기억들을 끝없는 수다로 건져냈다. 그리고 그동안 생긴 가족들의 변화를 나누고 손주들의 사진을 서로 보여줬다. 앞으로 이들과 따스한 눈길로 함께 운동하며 어울려 살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지났고 나이 들었다지만 옛 동료를 못 알아 봤다는 것이 나에겐 충격이었다. 찬찬히 사람을 지켜보던 내 버릇이 어느 사이에 슬쩍 흘러보는 습관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길에서 혹은 어느 낯선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도 나와 예전에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다시 나에게 찾아왔지만 그저 스쳐 지나 보냈을 지도 모른다는, 그것이 사람만이 아니라 만사에 적용된 내 의식의 변화라면, 나에게 중요했던 것들을 나는 소중히 간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잃어버리는 것들과 잊어버리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나는 시간의 물결에 빠르게 휩쓸려 흐르는 두려움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