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영사관 “후손이 보훈처에 직접 신청해야”
손자 “100세 앞둔 아버지 속히 전수받기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사망 76년이 지난 2023년에야 독립유공자 공적을 인정받은 안순필(페드로 안) 선생의 후손들이 서훈 사실조차 알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인의 아들은 흥사단 동남부지회 등에서 공로패를 받을 정도로 잘 알려진 지역 인사였다는 점에서 해외 독립유공자에 대한 보훈처와 애틀랜타 총영사관의 무관심과 탁상행정이 비판을 받고 있다.
멕시코와 쿠바 일대의 대표적 독립운동가로 꼽혔던 안순필 선생의 손자 로렌조 주니어 안은 2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국가보훈처가 제104주년 3·1절을 맞아 안순필 선생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한 데 대해 “가족 누구도 들은 바가 없다”고 밝혔다. 안 선생의 아들로 쿠바 아바나의 한인회 격인 재쿠한족단 부단장 등을 역임하며 함께 독립운동에 헌신한 안수명(로렌조 안)씨 역시 1년이 넘게 지나도록 추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재미한족연합회에서 발급한 쿠바 한인 등록증에 따르면, 안순필(페드로 안)의 셋째 아들로 안수명(로렌조 안)이 기록돼 있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 디지털도서관에서 보관 중.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이자경 연구가의 저서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1998)〉와 김재기 전남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조사를 종합하면, 안순필 선생은 1905년 멕시코로 이주해 선박용 밧줄을 만들던 에네켄 공장과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며 모은 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탰다. 또 아바나에서 대한인국민회와 국어학교를 설립했다. 보훈처는 안 선생의 공적 사실에서 1918~1941년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후 1924년 쿠바에서 태어난 아들 안수명 씨가 부친을 이어 아바나 한인청년단 고문 등을 맡으며 현지 한인사회 부흥과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흥사단 동남부 지회와 민주평통 애틀랜타 협의회가 2015년 안 선생의 공적을 기리며 수여한 공로패와 감사패도 그가 대신 받았다.
쿠바 아바나의 흥민한국학교에서 교사로 일한 안수명의 누나 안정희, 안옥희, 안홍희.
안순필 선생의 부인 김원정 역시 한국학교에서 교육상담을 운영하고 대한여자애국단 아바나 지부를 설립해 초대 단장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지만 모두 독립 유공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잊혀졌다.
이후 2017년 이자경 연구가가 당시 재외한인학회 회장을 맡고 있던 김재기 교수에게 국가유공자 신청을 문의했지만, 서훈은 수년째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가 지난해야 포상이 이뤄졌다.
이 연구가는 “쿠바 독립기념일이나 미국 국경일만 맞으면 손에 태극기를 들고 나와 독립을 부르짖으며 시가행진을 펼친 분들이 이들”이라며 “안순필 가계는 대한민국 해외항일운동사에 길이 남겨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재외한인 독립유공자 후손을 찾아 서훈과 감사를 전해야 할 기관은 손을 놓기 일쑤다. 안 씨 가족은 쿠바 공산당을 피해 1961년 플로리다로 망명해 살고 있지만 보훈처도, 관할 공관인 애틀랜타 총영사관도 이를 전혀 모르고 있다.
안수명 씨는 동남부 한인사회에 잘 알려져 있다. 본지는 이미 2015년 ‘한국은 내게 평화·사랑·자유의 상징’이라는 제목으로 안 씨 부자의 독립운동 공적 기사를 게재한 바 있고, 2019년 1월에도 LA 중앙일보에 ‘한국판 보트 피플 한인 백수 잔치’라는 제목으로 안 씨 부부의 근황이 보도된 바 있다.
이에 대해 총영사관의 최종희 보훈 담당 영사는 “(후손이) 국가보훈부에 직접 신청해야 한다”며 “공관에서는 후손 중 생존자가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안 씨 가족의 한 지인은 “서훈 사실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신청하느냐”고 반문했다.
최 영사는 보건복지부 소속으로 2022년 애틀랜타에 본부를 둔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의 업무 협조를 위해 파견됐지만, 코로나19 비상사태 종료 이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업무 연관성이 떨어지는 보훈 영사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업무 분장은 공관장의 영역”이라며 “보훈 영사는 주로 묘지 관리 등을 맡는다”고 전했다.
손자 로렌조 주니어는 “오는 9월 아버지가 100세를 맞이한다”며 “그가 이미 돌아가신 애국지사 할아버지를 만나기 전에 한국 독립을 위한 희생과 공헌을 정부로부터 인정받기를 바란다”고 거듭 호소했다.
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