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화분에 물을 주는 일이다. 내 방 책상위에 있는 화분 3개에 물을 준다. 화분 3개중에 ‘시클라멘’이라는 이름의 꽃에 물을 줄 때면, 20송이쯤의 빨간 꽃들이 가느다란 줄기위에 꽃다발로 뭉쳐 나를 보고 웃으며 인사한다. 물을 주어서 고맙다고, 덕분에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웃는다. 그 꽃다발의 인사가 나의 하루를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게 한다.
은퇴 후 같은 콘도에 십년 살아오면서 매일 아침에 일어나 화분에 물을 주었다. 내 책상위에 3개의 화분에는 풀꽃들을 길렀다. 식당 창가에는 행운 목과 떡갈잎 고무나무 화분이 있다. 화분마다 물을 주며 자라는 모습을 보고, 꽃이 피면 기쁘게 감상했다. 식물들이 겨울에 집안 공기에 수분을 더하고 산소도 첨가할 것이다.
지난 가을에 홈디포에서 시클라멘이라는 꽃 화분을 사다가 화분에다 옮겨 심어 책상위에 놓고 나서는, 그 날로부터 오늘까지 매일 빨간 꽃들을 피워, 20여송이들이 꽃다발로 뭉쳐서 내가 꽃들을 볼 때면 언제나 밝게 웃는다. 가을-겨울-봄 반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풍성한 꽃다발로 나를 반긴다. 오래된 꽃이 시들어 쓰러지면 새 꽃이 자라며 밀고 올라와서 죽은 꽃 자리를 대신한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시클라멘은 여름에 꽃도 잎도 시들어 잠복기에 든다고 한다. 시클라멘은 감자처럼 구근 식물이다. 감자는 가을이면 꽃도 잎도 시들지만, 시클라멘은 그 반대로 여름에 시든다고 한다. 물을 일주일에 한번 흠뻑 주되 밑바닥이 흥건하게 하여 뿌리가 밑에서 물을 흡수하도록 하라고 한다.
인터넷에서 알려주는 방식을 알기 전에 물을 주듯이 계속해서 매일 조금씩 물을 화분의 가장 자리로 주고 있다. 그래도 꽃과 잎들이 무성하게 잘 자란다. 감자 같은 구근에 물을 주면 썩을 수도 있다고 한다.
내방에서 시클라멘이 반년 동안이나 매일아침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 나를 반겨주는 건강한 식물로 자라는 조건들 중에 아마도 남향 창문의 블라인드 사이로 햇빛이 잘드는 것이 제일 큰 이유 같다. 방안 기온은 늘 따스하고, 매일 물을 주니, 시클라멘 뿐만 아니라 다른 식물들도 잘 자란다.
제비꽃 화분이 시클라멘 화분 옆에 있다. 제비꽃은 6년이나 같은 화분에서 한번도 시들거나 마른 적이 없이 계속 자란다. 놀라운 사실은 내방의 제비꽃은 일년 사시사철 내내 꽃을 피운다. 진한 자주색 꽃들이 피었다가 시들기 전에 다른 꽃대가 올라와서 꽃을 피우고, 꽃이 피어 있는 동안에 뿌리 부근에서 꽃대가 새로 자라는 것들이 보인다. 그래서 사철 꽃을 본다.
제비꽃은 잎사귀 밑에 줄기를 보지 못했지만, 6년이나 계속 자란 내 방의 제비꽃은 엄지 손가락 같은 줄기가 잎들과 꽃줄기를 포기 채 떠 받들고 있다. 사철 햇빛이 들고 기온이 늘 같으며, 매일 물을 주니, 겨울 잠을 잊고 사철 꽃을 피워내는 돌연변이가 생긴 것 같다.
제비꽃처럼 시클라멘도 사철 현란한 꽃들을 피웠으면 좋겠 으나, 두고 볼 일이다. 남향 창문이 있고 화분을 한 번 길러보고 싶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화려한 꽃다발을 매일 돌보며, 꽃이 주는 밝은 기운으로 하루하루를 시작하며 조금 더 행복하면 좋겠다.
아침에 물을 줄 때 젊음의 상징 같은 새빨간 꽃다발로 나를 맞아 주는 시클라멘을 대할 때, 세상엔 이렇게 간단한 상생의 아름다운 인연도 있어요. 나를 따라 웃으세요. 감사하세요. 그렇게 나에게 속삭인다. 시클라멘과 인연을 제비꽃과의 인연처럼 오래 이어 갈 것 같다.
시클라멘 꽃말은 ‘질투,’ ‘지나간 사랑’이라고 한다. 시클라멘을 노래한 가사가 있다:
“너와 함께 보고 싶었어 새파란 하늘/ 그렇게도 소박한 꿈/ 밥보다 챙기던/ 네게서 오던 통화도/ 실수로도 울릴 일 없네/ 못해준 게 많아서 가슴 아픈 기억이/ 너를 두고 혼자서 흘러가는 시간이/ 아쉽다 아쉽다/ 나를 보듬었던 손길이 걱정했던 눈빛이/ 작아지던 숨결이 마지막 그 온기가/ 그립다 그립다/ ..”
하트모양의 잎마다 줄기가 구근에서 나오고, 구근에서 나와 뻗은 20 센티미터의 가느다란 꽃대위에 빨강 꽃잎 5개가 꽃 술 뒤로 뻗고, 여러 개의 꽃들이 어울려 꽃다발을 만드는 시클라멘, 여름이 와서 저 꽃들과 잎들이 시들고 나면 나도 빈 화분을 보며 아쉽고 그리운 마음으로 돌아볼지도 모른다. 지나간 사랑처럼 그리워할 지 모른다. 시들어 버린 모란꽃을 다시 피기까지,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린 다는 김 영랑의 시처럼, 나도 시클라멘이 시들면 가을을 기다릴 지 모른다. 슬픔대신 밝은 기대로 기다릴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