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스스로 얼마나 행복하다고 느낄까. 최근 발표된 ‘2024 세계행복보고서(WHR)’에 따르면 한국인이 매긴 행복 점수는 전 세계 143개국 중 52위였다. 행복도가 높은 것으로 정평난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수위를 차지한 가운데, 한국은 일본(51위)과 필리핀(53위)·베트남(54위) 등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그런데 행복감은 오래 건강하게 살고(건강기대수명, 3위) 경제적으로 윤택(경제력, 25위)하다고 해서 오는 게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내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나 기관(사회적 지원, 83위), 타투·동성애 등 논쟁적인 사안에서 사회적인 눈치를 보지 않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선택의 자유, 99위)의 유무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갤럽세계여론조사(GWP)가 해마다 설문 조사해 내놓는 이 같은 내용의 보고서는 지난 20일 유엔이 정한 ‘국제 행복의 날’을 맞아 공개됐다. 올해 보고서엔 2021~2023년 데이터들이 반영됐다.
보고서는 행복을 규정하는 지표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 ▶건강기대수명 ▶사회적 지원 ▶선택의 자유 ▶관용(최근 수개월간 기부 여부) ▶부정부패 지수 등 6가지를 들었다. 이런 지표값을 합산한 한국인의 행복도 점수는 10점 만점에 6.058점으로 52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1인당 GDP(4만5313달러)로 본 경제력은 25위로 비교적 높았다. 건강기대수명도 143개국 중 3위(73.1세)로 최상위였다. 하지만 다른 항목이 한국인 행복 점수를 끌어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사회적 지원(83위), 선택의 자유(99위) 등이 전체 행복도보다 훨씬 낮았기 때문이다. 하위권일수록 청렴함을 나타내는 부정부패 지수의 경우 88위로, 역산해보면 전체 순위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7년 연속 행복도 1위인 핀란드(7.741점)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극명하다. 핀란드의 기대수명(71세·19위)과 1인당 GDP(4만9244달러·19위)는 한국보다 순위가 낮거나 비슷했다. 하지만 사회적 지원(2위), 선택의 자유(2위) 지표는 최상위였다. 부정부패도 136위로 매우 낮았다. 한국과 전체 순위가 비슷한 일본(51위·6.060점)도 사회적 지원(46위), 선택의 자유(74위), 부정부패(112위) 항목에서 한국보다 나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인이 유독 사회적 지원과 선택의 자유를 낮게 평가하는 이유로 “경제적 수준을 떠나 사회·정치적으로 선진국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1인 가구는 증가하는데 정부의 사회안전망은 취약해 각자도생의 사회로 가고 있다”며 “사회 양극화와 빈부 격차의 심화로 선택의 자유도 제한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년보다 노인이 덜 행복한 한국
이번 조사에서 한국은 노인(60세 이상)의 행복도(5.642점, 59위)가 청년(30세 이하)의 행복도(6.503점, 52위)보다 떨어지는 나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일본의 노인은 36위, 청년은 73위였다. 미국의 경우 노인은 10위, 청년은 62위로 그 격차가 훨씬 컸다.
이처럼 한국 노인이 행복감을 덜 느끼는 이유는 높은 노인빈곤율, 취약한 노후 대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국가별 노인 빈곤율을 공개한 2009년 이래 계속 1위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지난해 말 나온 ‘한눈에 보는 연금 2023’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한국 노인(66세이상)의 소득 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평균(14.2%)보다 약 3배 높았다. 소득 빈곤율은 평균 소득이 빈곤 기준선인 ‘중위가구 가처분소득의 50% 미만’ 인구 비율을 뜻하는데, OECD 국가 중 노인의 소득 빈곤율이 40%대인 국가는 한국뿐이다. 한국 노인은 전체 인구 평균 대비 가처분 소득도 68%로 일본(85.2%), 미국(93.2%)보다 적었다.
이와 관련,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후 준비가 덜된 상태에서 기대수명이 높다보니 노인 빈곤,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이 노인 행복도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런데 이런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던 과거 전통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만큼 고령자의 행복도는 더 낮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